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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하며 살 것 인가? (2021.01.08. 금요기도회, 야고보서 4:1~10)

 

야고보서 4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옛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보자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는가, 무엇을 뿌리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이 결정되게 됩니다. 어린아이 보면 거의 누구나 밝고 환한 모습, 해맑은 모습을 보이지만, 50, 60년 인생을 살아간 뒤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여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배어있음을 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비단 우리의 얼굴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것들이 이처럼 우리가 추구해왔던 삶의 가치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이루어집니다. 삶의 성취나, 여러 인간관계, 또 삶의 열매들 속에 우리의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은 상황과 형편에 의해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도 하고, 또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기회를 얻었느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가 무엇을 품고 살아가느냐 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요, 이것이야 말로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서 우리를 진실로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가장 존귀한 길로 인도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는 탐욕과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는 것이 옳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눈앞에서 탐욕과 정욕이 아른거리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할 때에, 단호하게 그것을 거부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그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탐욕과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길의 실체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다같이 1~3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싸움과 분쟁이 일어납니까? 그 싸움과 분쟁의 핵심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욕심, 자리에 대한 욕심, 육체의 만족을 얻기 위한 욕심, 명예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욕심, 온갖 욕심이 우리 마음 중심에 있을 때 우리는 싸움과 분쟁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여러분이 욕심을 내가다 얻지 못하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탐을 내다가 갖지 못하면 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욕망에 이끌리는 삶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처럼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욕심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것을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탐욕과 정욕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죄악의 한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임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4절 말씀입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간음하는 사람들은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유혹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의 쾌락을 친구로 삼을 것인지, 하나님을 친구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둘 다 함께 친구로 둘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1~4절까지의 말씀은 욕망에 따라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삶, 하나님을 떠난 삶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5~6절은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욕심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진실로 사랑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5절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 안에 임재하여 계시는 성령님을 질투할 만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께서 서로 경쟁하듯이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 사랑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헛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그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 마치 하나님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바탕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실패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를 얻게 하고, 우리의 삶을 존귀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끝으로 8~10절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 가까이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자 나아가는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고개를 들어야 하늘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자리에 나아갈 때,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욕망을 동시에 품는 두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순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음, 세상의 즐거움 속에서 쾌락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진지하게 구하는 마음 주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라 선포합니다. 그러나 사실 욕망에는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아무런 욕심이 없고,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은 마른 풀과 같이 시들어버린 사람입니다. 생명은 살고자하는 욕구가 있고, 성장하고 번영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욕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실제로 그렇게 되어선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건강한 욕심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욕심과 욕망은 늘 말씀의 통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욕심과 욕망은 무엇보다 주님을 향해야 하고, 주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성령님께 붙들릴 때,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갈 때 우리의 건강한 욕망은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욕망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부추기는 욕망입니다. 교만함 위에 세워진 욕망입니다. 특별히 돈에 대한 욕망은 이러한 위험이 가득합니다. 돈에는 막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적으로 돈으로 안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있고, 어떤 어려운 일도 돈으로 거의 대부분 해결 가능합니다. 돈의 힘과 능력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돈을 깊이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돈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해 버립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거의 동등한 자리에서 힘을 겨루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 보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추구하는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오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꺼이 주님의 뜻대로 나의 것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욕심을 억누르려고 하다보면, 그 욕심은 왜곡되어 다른 모습으로 분출대고 맙니다. 많은 목회자들을 보면, 자기 절제, 자기 억압을 과도하게 하다가, 결국 다른 곳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욕심을 무시하고 힘과 의지로 누르려고 하다가 발생한 파국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이 거룩한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가 주님의 은혜에 감격할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안에 넘칠 때, 우리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기꺼이 우리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과 더불어 사용하게 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것을 다팔아 자신을 따르라 했을 때 그것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자기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제자들 또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새롭게 얻을 자리와 영광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진실로 버린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다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가장 큰 감격으로 여겼습니다. 마치 감춰진 보물을 만난 사람처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그렇게 감격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에게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보상해주고, 기꺼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이전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원리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누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 옳은 길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귀한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올 한해 더욱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예배를 드림으로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일하심을 느낍시다. 찬송을 부름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심을 느끼고, 말씀 가운데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깊이 들어갑시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갈 때, 우리의 욕망은 거룩한 욕망이 될 것이요, 우리의 마음은 성결해질 것이며, 우리의 삶 속에서는 예수님의 향기가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