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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사람 (2021.01.15.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4:11~17)

 

야고보서 4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입니다. 왜 겸손하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창조를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때에 우리의 시선은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변화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기준으로 내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조금 더 많다고 해서 나를 필요이상으로 높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나를 필요이상으로 낮추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이미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겸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늘 겸손하게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구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보게 되면,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을 거룩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고 자기를 높이는 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늘 버거워하고 회피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거역하고, 또 알지못해서 거역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죄인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내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죽음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깊이 묵상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공로, 우리의 자랑, 우리의 의가 모두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덮은 주님의 충만한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내가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심판에서 의롭다 칭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심판을 대신 받아주실 주님의 보혈이 우리 앞에 분명히 드러나기에,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판이 두려워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신다는 마음으로, 또 그분과 동행하는 마음으로 늘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그분을 기억하며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11절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시편 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과 같은 길에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시편 104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삶, 그러한 삶은 교만한 삶이며 악인의 삶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러한 삶을 되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3절 말씀을 통해 이와같이 선포하셨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을 찾는 겸손한 사람은 복이 있으니,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얻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고, 또 겸손한 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주님을 믿는 것과 함께 갑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선포된 야고보서 46절과 10절 말씀은 이러한 겸손에 관하여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겸손해야 할 것을 강조하여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 말씀에 이어, 겸손의 삶이 우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를 선포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겸손이 실제 우리의 관계 속에서, 또 우리의 인생관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먼저 오늘 말씀 11, 12절 말씀은 우리의 관계속에서 겸손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를 선포합니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를 뒷담화 하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뒤에서 욕하거나 판단하여 정죄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말씀이 우리를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누군가를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으로 율법을 대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율법을 규정하고 바꾸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말씀을 비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율법을 만드시는 분도, 율법을 가지고 재판하시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분이 구원하시고, 그분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앞서, 겸손이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그리고 그분의 심판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할 때에,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사 자기 목숨을 내어준 존재, 지금도 하나님께서 빚어가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람과 하나님의 연결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사람을 모욕하고 비방하고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존귀한 존재라 선포하셨는데, 내가 이 사람을 비천하다 선포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할 때,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할 때 이웃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내가 이처럼 용서받은 자요, 용납받은 자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고, 내가 이처럼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충만한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감싸 안아주는 마음을 갖게 되고, 기다려주고 용납해주고 품어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을 조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죄악을 저지르고, 어떤 연약함을 보였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러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모두 알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조심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할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정죄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런 생각과 비판적 사고를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러한 비판과 판단 속에 감추어져 있는 우리의 은밀한 욕망과 교만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판단력 앞에서, 또 이웃의 삶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계속해서 13~17절 말씀을 통해 인생관 속에서 어떻게 겸손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말씀은 선포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장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일년동안 장사하면서 큰 돈을 벌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인생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한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생각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그저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는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선한 방법인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대할 때에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흥망성쇠가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이웃 앞에서 겸손하며, 무엇보다 인생 앞에서 겸손합니다. 호언장담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호언장담하는 사람은 이 모든 일을 자기 힘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다 그 길이 꺾이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의지하며 걸어가고, 그 길이 평판할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그 길이 험난할 때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승리의 길을 굳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늘 하늘 아버지를 염두하는 삶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나와 동행하고 계시고,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시며, 내 삶 가운데에서 말씀하고 계심을 아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시고, 내 삶 속에서 선을 이루시고 계시며,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 겸손의 삶입니다. 내가 함부로 주인 되려고 하지 않는 것, 함부로 심판자 되려고 하지 않는 것, 함부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지 않는 것, 이것이 겸손의 삶입니다. 이것이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비방하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요, 자기 인생에 관하여는 함부로 장담하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겸손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겸손입니다. 얼마전, 유재석이 자기는 꿈이 없다. 오늘 하루를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고백이 인생을 통찰한 깊은 겸손의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유재석씨는 신앙인이 아니기에 그저 지혜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한 것 뿐이 겠지만, 우리는 믿음으로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감으로, 진실로 겸손해지고, 주님 닮아가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