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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인내의 특별함 (2021.01.29.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5:7~12)

 

야고보서 5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이제, 야고보서의 말씀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어른이었던 야고보 사도가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우리가 지난 두달여간 함께 나눈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다양한 권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편지를 마무리하며 최종적으로, 고난과 환란 속에도 흔들리지 말고, 온전히 그 믿음을 세우라 권면하였습니다.

 

잠시 2000년전의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당대는 로마가 거의 모든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통일이었습니다. 많은 피지배 국가들은 세금과 노역으로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당대는 노예 사회 였기 때문에,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큰 고통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대체적으로 유대인과 같은 피지배 국가의 사람들, 노예와 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이단 취급을 받았고, 또 로마 사회에서는 특이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주일이 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배도 새벽에 드려야 했고, 예배를 드린 후에는 나가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대 믿음의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신앙을 버리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겐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곳 밴쿠버에서 목회를 하는데, 우리 성도님들에게 매일 매일 안 좋은 일이 발생하고, 계속해서 기도제목이 늘어나게 되면, 마음이 크게 쓰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대의 교회들도, 사도들과 장로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계속해서 성도들을 권면하였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성경 말씀 속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당대의 고통받고 고난 받던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다시 세우심, 그리고 소망의 말씀이 가득합니다. 말씀이야말로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야고보서 역시 이러한 위로와 권면과 회복의 말씀으로 그 말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야고보서 5장 말씀은 크게 세 부분으로 성도들은 위로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부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탐욕으로 모은 부는 결국 썩어 없어질 것들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온갖 악행으로 모은 그들의 부는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증거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며, 거룩한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악한 자들의 부유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또 악한 자들이 승승장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성공일 것이라 생각하지도 말라 선포하였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직 진리를 붙잡으라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두 번째 부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악한 부자들에게 대한 경고와 쌍을 이루며, 선한 삶을 살 때 겪게 되는 고난을 인내하라 말씀하였습니다. 7, 8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 사도는 비로소 형제들아 라고 부르며 권면을 시작하였습니다. 1~6절까지의 경고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속적인 악한 부자들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7절부터는 성도들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권면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길이 참고 견딥시다. 마치, 농부가 귀한 열매를 기대하면서 오래 오래 참는 것처럼, 때에 맞는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을 굳게하고, 인내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믿음 생활이란 다름 아닌 인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인내는 참 어려운 것입니다. 인내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도 되돌릴 수 없고, 다가올 시간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안개가 가득찬 것 도로 위를 가는 것처럼,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시간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버텨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주님 이 고통이 언제 끝납니까? 주님 제 삶이 언제나 나아집니까? 주님, 언제 햇살이 찾아올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삶은 그 자체로 참 힘들기 그지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에게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우리에게 있어서 인내는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시간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주님께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1800년 중반 뉴욕에서는 고층빌딩 붐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1853년 미국에서 고층 빌딩 붐이 일어났다. 고층의 건물이 다수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높은 건물을 올라가기 위한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1853년 설립된 OTIS사는 고층 빌딩에 필수적인 엘리베이터를 개발하였습니다. 당연히 큰 매출을 올리게 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의 불만을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빌딩만 컴플레인이 한건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회사측에서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조사원을 파견하였고, 확인 결과 그 건물의 관리인이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해 놓았다고 합니다. 일단 거울은 폐쇄된 실내의 답답함이 덜하게 합니다. 또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확인하다 보면 시간 가는줄을 모르게 되고,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다고 느끼기 됩니다. 거울이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은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속도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인내의 길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가 바라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시간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이 버텨내야만 하는 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우리 예수님께 주목하는 인내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이 순간 내 삶 속에 함께 하심을 기억하는 인내요, 우리 주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을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게 되면, 그때부터 농부의 마음 속에는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살아있는 씨앗은 비록 그 자라는 것이 순간 순간 보이지 않지만, 그 생명력으로 반드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성장할 것입니다. 또한 농부는 따뜻한 햇살과 때에 맞는 비가 내릴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하늘과 땅이 곡식을 풍성하게 키워낼 것입니다. 그렇기에 농부는 아무것도 안하고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풍성함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선한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있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우리 안에 있으며, 놀라는 주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 안에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고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낭비되는 시간은 없고, 그저 기다리는 시간도 없으며, 의미없는 시간도 없습니다. 모든 시간이 주님 안에서 사용되는 시간,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내는 그저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기대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반드시 선한 일을 완성하실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완성은 주님의 강림으로 완성됩니다. 마치 이른비와 늦은비로 열매가 완전히 맺히게 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모든 인생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 최종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굳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조금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않으며, 고통과 고난이 있더라도 최후 승리에 대한 믿음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믿기에, 주님의 사랑안에 있음을 믿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완성될 것을 믿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일에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인내는 그저 버텨내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믿고, 또 주님께서 내 모든 인생을 완성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삶에서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이웃과 화목하게 지냅니다. 9절부터 11절 말씀입니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있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이웃과 불화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고통과 힘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원망함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이 가난하고 힘든 것은 누구 때문이야, 내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누구 때문이야, 내 삶이 꼬이는 것은 누구 때문이야. 이와 같이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를 탓하는 것도,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그 답답함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토로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거울의 역할을 해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예수님 뿐이십니다. 고통과 어려움의 시기 속에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도 우리 주님이시오,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시는 분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설사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누군가를 탓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최악의 상황 마저도 가장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드시는 분이시오, 가장 절망적인 길을 가장 큰 소망으로 뒤집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안에 거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복되다 할것이며, 욥처럼 역전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시야 말로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으며, 품을 수 있고, 나아가 나눌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게 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기대하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헛된 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맹세의 본질은 자신은 시간을 넘어설 수 있다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시간과의 싸움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소망이 언젠가 이루어질 것들을 기대하며, 오늘의 고통과 고난을 버텨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 한켠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불안합니다. 이러한 근심이 사실 하나님 없는 사는 사람의 인내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허세와 허풍을 부립니다. 곧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모든일를 내가 이루어낼 것이다. 미래를 미리 움켜쥐는 행위가 곧 맹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암시이자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누구도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인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내이자 하나님을 소망하는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인내는 무엇가를 바라며 기다리며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미 심으신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열매가 맺어지길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의 의미를 신뢰하며,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허투루 마음을 과거나 미래로 넘기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인내는 주님을 향하는 인내입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는 인내는 보장받지 못하는 인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장 대신에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인내는 주님을 만나는 인내입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며 우리의 삶을 끝까지 걸어갔을 때,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이 계시며, 우리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다운 열매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장해주시는 소망을 믿으며 나아가기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헛된 맹세가 아닌 굳은 신뢰의 삶을 살아갑니다. 열매는 주님께 맡기고, 오늘 하루 충실히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것을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인내를 선포합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인내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내는 세상 사람들의 인내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내는 성공, 성취, , 명예, 권력, 안정 이러한 것들을 기대하면서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수고를 인내라 표현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인내는 이와 다릅니다. 말씀이 선포하시는 인내는 주님과 동행함으로부터 오는 인내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기에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는 인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값진 삶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인내입니다. 그렇기에 인내 가운데 평강과 기쁨이 있고, 인내 가운데 사랑이 드러납니다. 또한 말씀이 선포하는 인내는 주님의 강림을 소망하는 인내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완성시켜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낙심하지 않고, 오늘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인내입니다. 열매는 주님께 달려있기에, 오늘 하루에 충실한 삶을 사는 인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은 우리에게 답답함과 조급함, 그리고 낙심하는 마음을 가져다 줍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심지어 화까지 가져다 줍니다. 그러한 마음이 가득하게 되면, 인내는 그저 시간과의 씨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네 삶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였다. 오늘 이 시간 너에게 임한 나의 은혜와 복을 바라보아라. 내가 나의 영광으로 네 삶을 온전히 완성할 것이다. 두려워 하지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나를 신뢰해라.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응답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