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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이들의 헛된 재물 (2021.01.22.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5:1~6)

 

야고보서 5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벌써 야고보서의 마지막 장, 5장의 말씀입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매일 반복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어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준비하면서,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야고보 사도가 쓴 편지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과 늘 동행하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교회를 담당하는 교회의 어른으로 오랜 세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글의 형식으로 일종의 신앙 지침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서는 당대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신앙인의 관점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달간의 말씀을 통해서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경건이 무엇인지,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성도는 말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는 무엇인지, 겸손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두 당대의 성도들 뿐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주님을 붙잡고 살아갈 때에, 성도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부분을 다룬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하였습니다. 더불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1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들으십시오. 부자들이여. 당신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통곡하십시오. 이 말씀은 놀랍게도 회개를 선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악한 자들의 심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이사야 136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13

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이 말씀은 악한 나라였던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말씀 속에서 울어라, 통곡하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대적했던 악한 권세들을 심판할 때 사용하던 표현이었습니다. 이 표현이 그대로 오늘 말씀에 드러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옛 선지자들의 선포를 인용하면서 부자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회개가 아닌 심판을 선포하는 오늘 말씀은 성도들을 향한 권면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악행을 일삼으로 부와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이후에 선포된 7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라고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7절부터가 바로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을 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 사도는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를 하였을까요? 그것은 거꾸로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이 낙심하지 않고, 더욱 굳건히 주님을 신뢰할 것을 당부하기 위함이였습니다.

 

당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결코 주류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소외받고 차별받은 이들이었고, 사회에서도 연약하고 가난한 삶을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이단이라고 보았고,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주변인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야고보서의 앞선 말씀에서 나타났듯이 신앙인의 삶은 오히려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야만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이 흔들리면, 믿음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자기의 삶이 이렇게 고단한데, 다른 사람들이 부유함 속에서 잘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면 더욱 흔들리게 되기 마련입니다. 나도 그냥 믿음보다는 오늘 잘먹고 잘사는데 마음을 더 써야 하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을 믿어도 삶속에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예수님을 굳이 믿을 필요가 있는가? 화려한 로마제국의 문화 속에서, 또 악한 사람들의 사회적 성공 속에서 당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이 흔들리곤 하였습니다. 옛말에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을 흔드는 무서운 시험이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이지를 깨닫게 하시고자 선포된 말씀이 오늘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치고자 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먼저 재물의 허망함을 선포합니다. 2, 3절 말씀입니다.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말씀은 우리가 재물을 주님의 일에 귀히 사용할 때엔 그 재물이 주님의 귀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는 것은, 그 재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용하길 원하시는 마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고가 하늘에 있음을 알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주님의 복음을 위해 귀한 재물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모으는 재물, 오직 자기의 탐욕과 욕망을 위해 모으는 재물은 하나님 앞에서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이 모였어도, 그 재물이 가치있게 사용되지 못한다면, 그 돈은 아무런 영향을 드러내지 못하는 썩을 것에 불과합니다. 그저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재물은 좀먹어 사라질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 말씀은 악한 자가 모으는 금과 은은 녹슬어 사라져 버릴 것이요, 그렇게 돈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악한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오만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심판뿐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울고 통곡하라고 선포하면서, 이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의지를 강하게 보였습니다.

 

이러한 야고보의 선포는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을 새롭게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말씀은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 마음에 끌리는 화려한 것들이 실상은 녹슬고 좀먹어 사라질 것들이라는 깨닫기를 가르친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시선을 내 눈앞에서 온 우주로 넓히고, 순간에서 영원으로 넓히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관점을 내 감정과 내 충동, 내 판단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으로 확장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만약 지금 이 순간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영원을 믿고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내 삶을 책임져줄 수 없는 헛된 재물에 내 운명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주실 하나님의 사랑에 내 삶을 거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온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 손에 움켜쥔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가진 재물의 아름다움은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우리를 영원히 아름답게 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재물의 유한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원함을 기억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재물이 주는 허망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기쁨을 바라볼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재물만을 바라본 사람이 맞이할 운명은 결국 심판이요, 멸망임을 기억하라 말씀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될 때, 진실로 믿음을 갖게 될 때에만 마음의 흔들림으로부터 삶을 굳게 지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상의 방식 앞에서, 세상의 성취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은 말씀이요, 말씀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재물의 허망함과 더불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당시 부자들의 악한 행실을 폭로하였습니다. 4~6절 말씀입니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이러한 우리의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성공했든 결국 사람들은 성공만 기억할 뿐 시간이 지나면 그 과정에는 무관심해지는 것입니다. 징키스칸이 정복전쟁을 위해 죽인 사람이 대략 사천만명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학살은 모두 잊혀지고 사람들은 그의 업적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정신은 이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요, 그 마음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결과는 주님께서 예비하실 것이요,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삶의 순간 순간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당대에 부유하게 살았던 악한 부자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길 요청하였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그 부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참혹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자기 밭에서 일꾼을 시켜 추수를 하고서도 그 일꾼들에게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주인에게 항의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를 지르며 우는 그 소리가 만군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당대의 노역꾼들은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과 유리한 상황을 이용해 돈을 떼먹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벌어놓은 돈으로 땅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살육의 날들이 이어지는 데도, 마음을 욕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들은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부자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였고, 예수 따르는 삶에 대해 불안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이러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악한 이들의 부유함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심판당할 악의 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을 부를 부러워 할 필요도, 삶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서 계수하고 계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 안에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곧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요, 그들은 반드시 애통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님 앞에서 온전하고 바르게 세우는 것, 그것이 주님 앞에서 필요한 것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삶, 그리고 그 믿음으로 나오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재물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귀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 세상이 풍족해지는 것 또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 것이라 믿는 것, 재물이 주는 기쁨과 쾌락을 삶의 중심을 여기는 것, 재물 그 자체를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없이 재물만 모을 때, 그 재물은 썩어 없어질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재물을 귀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재물을 주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게 될 것이요, 우리의 삶은 주님의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재물이 가진 무서운 힘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물의 마력은 우리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게 하게하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위해 죄악을 짓는 삶은 이방인의 삶이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하나님을 주님으로 삼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재물을 모아야 합니다. 헛된 방법에 따라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이방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바른 길로 가는 우리의 삶을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굳세게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 가운데, 주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