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모두를 존귀히 (2020.11.27.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2:1~13)

 

야고보서 2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를 통해 당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이 가르침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신앙의 지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저 우리의 마음의 문제, 생각의 문제를 넘어서 실천과 행함의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이 구체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 지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살펴보고, 다시 우리의 삶의 운전대를 주님 원하시는 대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오늘 1절 말씀에는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말씀의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 믿는 사람 답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오,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음속에 꼭 간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도록 인도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우리는 용서 받은 자, 은혜를 받은 자, 구원 받은 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큰 선물을 주님께 받은 사람들입니다. 용서 받은 자로서의 겸손과 감사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다시 모시고 살아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청합니다. 내 삶에서 어떠한 것도 하나님 보다 앞서게 하지 않는 것, 모든 우상을 내려놓는 것,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명령합니다. 이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내 형제, 자매와 같이 여기고 살아갑니다. 내 곁에 있는 어른들을 내 부모처럼 여기고 살아갑니다. 내 곁에 있는 어린이들을 내 자녀처럼 여기고 살아갑니다. 곧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책임지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시시 때때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양심을 깨우치시며, 주님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은 함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매사에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고심하며, 주의 뜻대로 선택하고, 주님과 동행하려고 애씁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와 같은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정체성을 기억하며,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 하십시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가르칩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 가지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구체적으로 선포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선포하였습니다. 2~4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모임을 갖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새로운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이 높은 귀족이거나 부유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성경 두루마리가 가까운 상석으로 인도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사람이 사회적 계층이 낮은 사람이거나 노예이거나 부랑자 같은 사람이라면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 그 사람은 서있던지 아니면 바닥에 앉아야만 했습니다. 그 사람의 지위나 부에 따른 명백한 차별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분명히 반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에서는 통하는 것일지 모르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차별하는 것 뿐 아니라,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5~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야보고 사도는 그 이유를 세상에서의 기준과 교회에서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세상에서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곧 세상 사람들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곧 성도들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 ‘권력’, ‘명예’, ‘지위’, ‘신분과 같은 것들이지만, 교회에서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한 분 이십니다. 만일 교회가 자신들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둔다면, 그것은 교회가 더 이상 교회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5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바라볼 때에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나 능력을 보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과 그의 사랑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찾는 자들,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공동체라면 마땅히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을 가장 환대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애통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품어주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가장 소중히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 기준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교회는 그 사람이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를 살피는 곳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는지를 살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6, 7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부자들은 여러분을 억압하는 데에 압장섭니다. 특별히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여러분의 것을 빼앗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도 그들입니다. 심지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고난에 빠뜨리는 것도 높은 고관들과 귀족들과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들의 행동에는 무관심하고, 그저 그들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부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부러워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당에 찾아오면 그저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환영하고 환대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난한 사람들, 허름한 사람들이 회당에 찾아오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은 살피지 않고, 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기고 박대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생각해 볼 때 무언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기준이 철저히 세상의 기준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마땅히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러한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대할 때, 그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그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의 삶과 그의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대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공평하고 차별없이 대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4절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안다면, 우리는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환영하고 환대하고 존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1)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무엘상 16

7(하반부)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또한 우리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는 하나님을 본받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중심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삶이 죄로 가득차있고, 모든 사람은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세상의 기준에 물들게 된다면, 그리하여 교회가 돈을 더 사랑하고, 권세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돈을 가진 사람을 더 중히 여기고, 권세를 가진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교회의 근본 바탕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에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끝으로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선포하였습니다. 8~13절 말씀입니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사랑의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황 평준화를 선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기록된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을 지킨다면 잘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차별하여 적용한다면 죄를 짓는 것 입니다. 율법의 원리는 율법 중에서 골라서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만 어겨도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웃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높은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찾아온다면 여러분은 알아서 그를 잘 대해줄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 부족한 사람, 가난한 사람, 천대받는 사람이 오면 이 사람 또한 가장 높은 사람이 방문했을 때 대접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사랑해준 것처럼 사랑해주십시오. 그것이 교회입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처럼 사랑합시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나눈 것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용서받은 자, 사랑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람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에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정체성에 따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공동체, 곧 교회로 모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의 기준은 늘 주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구원이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 안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따라 아름다운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