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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4장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1. 압살롬은 동생 다말을 범한 이복 형제 암논을 죽여 아버지 다윗의 큰 분노를 샀고 3년을 자신의 외조부 그술왕 달매의 왕궁에서 피신하여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계책과 드고아 여인의 지혜로운 처신으로 마침내 귀환을 허락 받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마음으로 압살롬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돌아온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2. 압살롬은 이러한 다윗의 태도에 큰 분노와 좌절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동생 다말이 암논에게 치욕을 겪었을 때에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동생의 명예를 위해 암논에게 복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이러한 정황은 살피지 않고, 또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압살롬의 마음은 이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3.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압살롬의 마음을 부추기는 것이 또 하나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칭송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매우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압살롬의 아름다움을 크게 칭찬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흠이 없었다고 선포합니다. 당대에는 외모를 평가할 때에 그의 머리털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가 얼마나 머리가 많았는지 1년간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그 무게를 재보니 200세겔, 오늘날 기준으로 약 2.3 kg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4. 이것은 그저 잘 생겼다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며 그가 왕의 재목이라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모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람들은 압살롬의 아름다운 외모를 볼 때마다 그가 다윗왕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 칭찬하였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이러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5. 더군다나 압살롬에게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고, 이는 압살롬이 왕위를 이을 수 있는 걸림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그의 딸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압살롬은 그녀의 동생과 같은 이름인 다말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압살롬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의 인정이었습니다. 다윗은 그가 돌아온지 2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6. 교만과 불만이 함께 섞이게 될 때, 나타나는 모습은 과격한 행동입니다. 자신이 충분히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느낄 때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데, 아버지만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이제 이러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7. 압살롬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요압을 불렀습니다. 요압을 왕께 보내어 만나줄 것을 요청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압살롬의 부름에 두번이나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자기의 종들에게 요압의 추수를 앞둔 그의 밭에 불을 지를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자기의 것을 끔찍히 아끼는 요압이라면 이것에 바로 반응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역시 요압은 즉각 반응하여 압살롬을 찾아갔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에게 다시한번 왕에게 자신의 처지를 전하고, 얼굴을 뵙게 해달라고 청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8. 결국, 요압이 다윗 왕에게 가서 이러한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아뢰었고, 다윗왕은 그제서야 압살롬을 불러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무려 5년만에 압살롬은 다윗왕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왕 앞에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하였고, 왕은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미 마음에 반역을 꿈꾸기 시작하였습니다.

9. 오늘 말씀의 압살롬의 모습을 살펴보면,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과 불만입니다. 교만과 불만이 한 순간에 일어나면, 마치 기름과 불꽃이 만나는 것처럼 큰 불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립니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이런 대접을 받는거야 라고 생각하면,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에 면죄부를 주는 것입니다. 가인도 이러한 마음으로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고, 요셉의 형제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요셉을 팔아 넘기고 말았습니다. 사울도 이러한 마음으로 다윗을 늘 죽이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함정에 늘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겸손과 감사로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불만의 순간이 찾아와도 그 일을 죄로 이어가지 않습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은 교만한 마음이 들어도 곧 다시 그 마음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교만과 불만이 함께 터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감사는 우리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주님의 겸손을 기억하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죄로부터 지켜주고 나아가 주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10.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압살롬을 바라보며, 그가 왜 반역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치 불과 기름처럼, 그의 마음에는 교만과 불만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이 맞부딪혀 분노가 되었음을 우리가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겸손과 감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가 용서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에 담긴 지극히 큰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 덕분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삶에 가득한 주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통해 우리 안에 진실된 감사와 겸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주님이 주시는 겸손과 감사로 모든 교만과 불만을 넘어서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으로 불만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길을 찾게 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만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교만과 불만이 함께함으로 나타나는 죄악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하시고, 겸손과 감사로 주님의 길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