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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음 (2021.02.12.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1:1~10)

 

갈라디아서 1

1   사람들에게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오늘부터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자신이 사역 초반부에 사역한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의 성도들은 누구보다 바울의 복음을 먼저 받아들였고, 바울의 기쁨이 되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뒤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과는 생각이 다른 전도자들이 갈라디아 지역에 찾아와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진짜 사도가 아니라 이야기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상 바울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바울이 전도한 복음은 잘못된 복음이라 선포하며 자기들이 생각하는 잘못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디아 성도들은 이상 이전과 같이 바울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나아가 바울이 전한 복음은 배척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소식을 듣고, 크게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바울은 다시 갈라디아 성도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이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회개시키기 위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가 바로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읽을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은 당시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을 향한 편지이지만,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이 빠졌던 함정은 우리 모두가 빠질 있는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잘못된 복음을 지적하며 역설적으로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작은 교리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복음 교과서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으며, 우리가 신앙에 대해 있는 오해는 무엇이며, 복음이 무엇인지를 함께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1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사람들에게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말씀은 바울의 격정적인 마음 상태가 그대로 반영된 말씀입니다. 1절부터 바울이 뭔가 화가 단단히 느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갈라디아에 찾아온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가장 먼저 바울의 권위를 흔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도는 헬라어 단어 아포스톨로스에서 번역된 말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세우신 사람을 사도라 하였습니다. 당시 사도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살아있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여야 했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세계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권위가 있었기에, 사도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살아계실때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뒤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동산에서 만난 뒤에 극적으로 회심하였고, 그때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연구하고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예수님의 사도들을 직접만난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도로 인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과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사도로 인정받기에는 하자가 있고, 바울의 가르침은 잘못된 복음이라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상당히 먹혀 들어갔고,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바울을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편지에 가장 서두에 자기 자신이 사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선포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셨기에 사도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됨은 예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임을 분명히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정당성이 하나님으로부터 것임을 정면 승부하며 갈라디아 사도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호응하며, 다른 사도들과의 가르침과도 호응하며,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포한 복음으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강조한 , 인사말의 형식을 빌려 복음이 무엇인지 핵심을 선포하였습니다. 2~5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자신이 지금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 의례껏 전한 인사인 은혜와 평강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을 , 우리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 은혜와 평강을 누릴 있게 됨을 알았습니다. 온전한 복음안이 있을 우리는 은혜를 누리고, 평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얻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생수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자극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을 얻고, 조금씩 건강해지며,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 하루하루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이와 다릅니다. 마치 콜라와 같습니다. 순간 청량하고, 순간 달콤하나 계속해서 그것을 먹고 살수는 없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몸을 해치고, 강한 자극을 원하며, 일상을 살아갈 없게 만드는 , 그것이 다른 복음의 특징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혹하게 하고, 우리의 허황된 욕망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이야기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성실한 삶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삶이 우리를 진실로 세울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뭔가 새로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대단한 일들을 꾸며 대는 것들은 다른 복음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인사를 통해, 너희에게 지금 은혜와 평강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아멘.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모든 복음의 가르침은 이곳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는 , 은혜와 사랑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는 , 영광을 누리고 기쁨과 평강안에 거하는 , 그리고 이제는 주님 안에서 자유자가 되어 자유로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 그것이 복음의 핵심임을 바울은 문단부터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잘못된 교사들은 이러한 주님의 복음을 흔드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한 잘못된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할례를 했어야 했습니다. 또한 율법에 따라 안식일과 각종 절기를 지키고, 규례에 따라 각종 정결례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음식을 가려먹어야 했고,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려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물론이요, 이방인들에게까지 이러한 율법과 규정을 지킬것을 강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들이 편하도록 간편하게 만든 왜곡된 복음이요, 성경에도 어긋나는 일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온전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상 구원을 얻기 위해 할례를 하고, 절기를 지키고, 규례를 지키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고, 우리는 그저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어떠한 의미가 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사랑의 정신을 이해하여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입니다. 말씀은 윤리의 바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 우리가 그래도 지키는 말씀이 있고, 해석하고 적용해서 지키는 말씀이 있고, 우리가 이제는 이상 지키지 않는 말씀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이러한 이해를 크게 안타까워 하였습니다. 6~10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솔라 그라치아스 라고 선포하며, 오직 은혜라는 모토로 복음을 갱신하였습니다. 할례를 하고 절기를 지키고 율법과 규례를 의무적으로 따르는 것은 단지 실천적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 선포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편안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만큼 사랑을 주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의 여정은 다름 아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깊고도 높은지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주셔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 품어주시고, 먼저 안아주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저 우리에게 선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복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없는 복을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저 선택하셨고, 우리를 그저 사랑하셨으며, 우리에게 그저 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이 주는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나아가 자유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가 아로 새겨지는 귀한 역사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