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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체성 (2021.08.13.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전서 2:1~10)

 

베드로전서 2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람이 생각을 있게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합니다. 모든 생각은 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없습니다. 거꾸로 여러가지 다양한 표현의 말을 알고 있으면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있습니다. 고향이 전라북도 군산입니다. 그런데 군산 사투리 중에 꼼시럽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어를 언제쓰냐면, 예를 들어 친구가 맛있는 반찬을 도시락으로 싸왔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얄밉게 반찬 감추고 자기 혼자만 먹는 것입니다. 이럴 꼼시럽다라고 표현합니다. 뭔가 쪼잔하고, 뭔가 얄밉고, 그런데 완전 싫은 사람은 아니고, 그럴때 꼼시럽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꼼시럽다라는 단어는 전국에서 군산에서만 쓴다고 합니다. 저는 표현 때문에, 다른 표현으로는 맞게 설명할 없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비단 이런 사투리 아니라, 언어간의 차이, 뉘앙스, 표현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각에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평소 어떤 말을 주로 듣고 사용하는지, 내가 주로 쓰는 단어는 무엇이고, 내가 주로 쓰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으로 들어오는 , 입에서 나가는 말이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우리에게 선포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나누었던 골로새서 말씀에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선포하며 부끄러운 말을 금하고, 말씀을 풍성히 하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하나님을 찬양하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이 우리의 생각이요, 말이 우리의 마음이니, 말을 조심하고, 좋은 말을 하며, 무엇보다 말씀을 들을 것을 권유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찰 우리의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 사도는 앞선 말씀을 통해 모든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소망을 품고 담대히 살아가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있는 이유는 영원한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과 거듭남을 선포하기 있기 때문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므로라고 말하며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원한 복음의 말씀을 믿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줍니다.

 

1 말씀은 선포합니다.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남에게 악을 행하는 , 속이는 ,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연기하는 , 시기와 질투로 대하는 , 비방하는 이러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러한 , 이러한 마음, 이러한 생각들을 모두 우리 안에서 몰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 말씀은 그러한 것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갓난 아기들 같은 마음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에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다른 생각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뜻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되 갖난 아기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사모해야 합니다. 갖난 아기에게 있어서 젖은 유일한 생명의 근원입니다. 아기는 시시때때로 젖을 구하며, 매우 열정적으로 젖을 찾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안에 들어올 때에 우리는 날마다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거룩하여 지고,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며,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골로새서 말씀을 통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우리가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우고, 말씀을 바라보게 때에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빚어지게 됨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 것입니다. 가능하시면 통독도 좋고, 필사도 좋습니다. 요즘 하루 십분 말씀을 제가 보내 드리고 있는데, 시간을 내셔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채우는 것도 좋습니다. 금요기도회를 통해 말씀을 듣고, 무엇보다 주일예배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말씀으로 나아가야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본사람,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씀을 사모하여 성장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통해 날마다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 결국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고 선포하였는데, 우리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자체를 형식적으로 율법적으로 기계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 분의 용서, 그분의 성품, 분의 십자가, 그분의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말씀을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와 복음주의자)

 

이어지는 4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이처럼 우리가 말씀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될때 일어날 일들을 선포합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말씀은 선포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분은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있는 , 보배로운 돌과 같은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지금도 살아계시며, 무엇과도 바꿀 없는 보배로우신 분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초석이 되어 주셨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주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는 , 그리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주님을 기초석으로 두고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한옥 지붕) 말씀을 통해 주님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의 여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과 함께 세워지는 집이 된다면, 집은 성전이 것입니다. 안에 우리 하나님께서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보혈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있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게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살아있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제사장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음을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다시한번 선포하였습니다. 특별히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6~8절과 말씀에 인용된 이사야 28 16절과 시편 118 22~23, 이사야 8 14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이사야 28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18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사야 8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베드로는 이미 앞선 4 말씀에서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표현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약의 말씀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였고,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용서도 거절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면하였을 아니라 오히려 모욕하였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악습니다. 시편 118편의 말씀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버린돌처럼 버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을 다시 부활 시키시고, 우리 예수님을 새로운 성전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 영원히 살아계시며 세상을 주관하시고, 모든 구원과 의로움을 세우실 기촛돌이 된것입니다. 말씀처럼,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심판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예수님이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되지만, 믿지 않는자들에게는 심판이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믿는 사람이라면, 말씀으로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을 걸어가야  함을 선포하였고,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전으로 세워질 우리의 기촛돌이요,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바탕이시며,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이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말씀으로 단락을 마무리하였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말씀은 모두 구약의 성경을 인용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3 20절에서 선포된 택하신 족속, 출애굽기 19 6절에서 선포된 같은 제사장들, 신명기 7 6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소유가 백성. 구약 성경에서 선포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게 놀라운 주님의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의 여정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구원의 여정 속에 가득담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사랑의 정점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알수록, 사랑과 용서를 알수록, 은혜를 누릴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예수님의 뜻대로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결국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름다운 덕을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구원입니다. 사랑과 구원의 정점에 계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 물드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사람이 것입니다. (새벽교회를 바라보는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