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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을 이기는 (2021.08.20.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전서 2:11~25)

 

베드로전서 2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자유로 악을 가리는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2)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나누었듯, 베드로 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고난 중에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믿음을 굳건히 세우게 하기 위해 편지입니다. 당시 교회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본격적인 박해와 고난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가 로마 화재의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고,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자리를 떠나게 되었고, 아직 신앙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의 경우도 많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어른이었던 사도 베드로는 편지를 통해 교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교회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앞선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이 바라보아야 핵심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서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상황이 힘들어지고, 형편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상황과 형편에 마음이 빼앗겨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베드로 사도는 다시한번 말씀을 통해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나아가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수록, 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영원한 말씀위에 서서, 욕망과 자랑대로 살지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우리 주님을 기초석으로 삼아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 성전으로 자라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상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복된 사람, 주님을 덕을 선포하는 사람이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다고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 답게 더욱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사랑하는 삶을 사람이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차 우리가 말씀을 통해 배웠듯, 주님의 충만한 은혜안에서 살아갈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난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의 통치자들과, 자신들의 상전에게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선포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앞선 말씀에서 나누었던 사회적 상황과 배경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바라보아야 말씀입니다. 당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질게 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들이 바로 다름 아닌 당대의 통치자들, 그리고 그들의 상전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저 높은 사람에 관한 말씀을 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원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주제는 말씀 단락의 앞부분인 11, 12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11, 12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 사도는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습니다. 거류민이란 저희 같은 이민자들을 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민자, 또는 여행자와 같은 사람들이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향이 하나님 나라이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을 염두해 두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선포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악행을 당했을 , 억울한 일을 당했을 ,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는 첫번째 감정은 당연히 분노입니다. 나아가 분노로 복수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마음의 분노를 명분으로 복수를 넘어서 세상을 파괴하고 뒤집고 싶은 욕구가 솟아납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솟아오르는 육체의 정욕은 분노와 증오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분노와 증오에 마음을 빼앗지기 않기를 원했습니다. 순간에 오히려 선한 모습을 보여 악행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나아가 그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저급하게 대하고, 박해하더라도, 베드로 사도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복수심에 죄를 짓지 말고, 오히려 고귀함과 거룩함을 지키는 온전한 행실을 보일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악이 진짜 악한 이유는 우리를 해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물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악의 속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우리의 마음을 물들이지 못하게 하는 , 어떠한 악으로도 우리의 고귀함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 그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의 구체적인 사례로 첫째로 국가와 통치자에 대한 태도를 선포합니다. 13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자유로 악을 가리는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여기에서 왕은 로마 황제입니다. 그리고 총독은 로마 황제가 파견한 빌라도와 같은 총독입니다. 이들은 두말할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던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로마 제국의 악한 모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의 맥락 안에서 오늘 말씀을 살펴본다면, 오늘 말씀은 로마 제국이 하나님께서 세운 정의로운 제국이라든지, 또는 로마 황제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국 안에서, 황제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인다 하더라도, 사회 제도가 가진 기능전체를 부정하지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세상 안에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제도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세금을 내고, 국가를 운영하고, 법을 시행하는 것은 혼란을 막고,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된 삶을 유지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하고, 국가에 협조하고 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수고하는 적정한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국가를 거부하고, 그저 제도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사회의 선과 정의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임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폄훼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비방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막아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 뭇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대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죄악이나 불의에 침묵하고 순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안에는 이에 대한 비판 역시 가득합니다. 오늘 말씀은 비록 국가가 악행으로 우리를 핍박한다 할지라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지켜야 것은 지키는 사람,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두번째 구체적인 사례로 상전에 대한 태도를 선포합니다. 18절부터 25 말씀입니다.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먼저 말씀은 노예 제도나 주인들의 폭력과 학대를 긍정하는 말씀으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은 당시 사회 상황속에서의 노예로 살아가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목회적 권면으로 읽어야 합니다. 당시 노예들은 노예 제도를 거부하고 저항하다 걸리면 무조건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주인들은 언제든지 노예를 죽일 있었습니다. 당시 사도들이 노예 성도들이 이러한 위험에 빠지도록 무책임하게 노예 폐지를 주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노예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고, 사회가 사람,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게 되는 데에는 수천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셔서 역사 안에서 해방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다만 당대 노예제도 속에서 살아가던 그리스도인 노예 성도들에게는 현실에 적합한 목회적 권면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들은 노예로서의 삶도 매우 고단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당대 노예 그리스도인들에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지를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승리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무리 가혹한 현실 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만은 잃지 말기를 권면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거짓도 없으셨지만 불의와 악의 세력으로부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모든 순간에도 끝까지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지 않았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선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열매를 맺었고, 예수님을 해한 악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패배한 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이제 세상을 통치하시며, 정의와 선을 완성하시겠다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당면한 현실과 상황으로 모든 것을 단정짓지 않습니다. 악한 주인이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박해한다 할지라도, 심지어 박해 가운데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모든 것을 계수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모든 것을 갚아주심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끝까지 선을 행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사랑과 존경으로 사람을 대하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의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을 이루어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칙이 아나리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예로 살아가는 , 노예로부터 탈출할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그때에는 탈출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노예제도를 바꿀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녹록치 않은 어려운 상황이라 한다면,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악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는 ,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추구해 나가는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중요한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책임지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대로 우리도 우리의 이웃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가지 원칙을 일관적으로 지킬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말고, 선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사업도,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인생길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도 주님이 막으시면 없고, 앞에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도 주님이 여시면 길이 생깁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가 주님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기억하고 복수의 마음을 내려놓고 끝까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것을 요청합니다. 한가지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방식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된 우리를 찾아오셔서 먼저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용서하시고, 품어주셔서 우리를 바꾸어 나가십니다. 주님의 방법은 은혜의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품을 없는 사람, 내가 용서할 없는 사람, 내가 사랑할 없는 사람을 사랑할 , 주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가운데에서 기적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헤아림을 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자기 유익을 구하다 다투지만, 주님의 방식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다 모두가 복을 얻는 방식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라의 통치자를 대할 때에도, 상전들을 대할 때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은혜를 나누어줄 것을 선포합니다. 나라의 통치자가 힘이 세보이고, 상전이 권한을 갖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의 질서 안에선 은혜를 베푸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도구로 이들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은혜의 통로가 되길 요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주님을 신뢰하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 은혜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이 되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 이처럼 은혜를 다시 붙들고, 모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은혜를 나누는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