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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여정 (2021.09.17.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 4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시험을 이상한 당하는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있는 자로다 영광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믿음에는 두가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바람을 담은 믿음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두가지 차원을 항상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차원의 믿음을 모두 귀하게 여기십니다. 믿음의 가지 차원은 서로 역동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때때로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또한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잠시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실 때도 있고, 때때로 거절하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우리가 바라게 만드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게 만드시고, 우리의 바람을 담은 믿음과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믿음을 일치시키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여정이 바로 신앙의 여정, 믿음의 여정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러한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신앙의 여명기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삶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출애굽 시대의 백성들과 그들을 이끌었던 모세, 여호수아, 그리고 사울과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대체적으로 욕심이 많았고, 꿈이 많았으며,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다루셔서 때로는 고난 가운데에 두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외로움 가운데에 두시기도 하시며, 그들의 마음의 중심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들은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길이 복을 얻는 길이요, 하나님을 떠나는 길이 망하는 길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소개하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청년기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요시아, 히스기야, 엘리야, 예레미야, 다니엘, 느헤미야, 그리고 욥기의 , 이러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남유다는 차례차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섰던 하나님의 사람들도 모진 고난을 받고 핍박을 당하고 세상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이방 나라들은 승승 장구하였고, 악이 승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세상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인지 깊은 질문을 가졌습니다. 시기의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던지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의 신앙은 어느 자리에 있으신지요? 신앙의 처음 선배들이 고백했던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이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화가 됨을 믿고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도 이겨낼 있고,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됨을 믿고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가 든든히 다져진 것입니다. 더불어 신앙의 청년기의 선배들이 고민했던 고민을 하신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이렇게 삶에 어려운 일들이 멈추지 않는지, 신앙은 이상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는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은지,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 고민이 때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신앙의 청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쌓일 수록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질문이 깊어 졌을 , 하나님께 구원과 회복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을 , 하나님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진실되게 물었을 , 그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유일한 응답, 완전한 응답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은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응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인용하신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누가복음 3 16~21 말씀입니다.

 

16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질문에 응답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를 다시 보게 하십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살리십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것들은 그저 그분의 기적이나 이적이 아닌,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극한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주시고, 부활생명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세상과 우리의 통치자가 되셔서 우리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를 책임져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영생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첫번째 신앙의 시작에서 고백했던 고백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이 됩니다. 그런데 복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참된 , 진정한 , 영원한 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선포된 복이요, 더불어 약속된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기에 이제 번째 질문조차 넘어서게 됩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삶의 역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심지어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붙들어주시고 책임져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과 생명을 주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은 이에 대한 그리스도들의 고백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1절과 2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한계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주님의 은혜의 자리, 생명의 자리에서 살게 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상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고, 더욱 담대하게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35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게 되었고,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실패하거나 망하지 않게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이 때로는 고난의 길이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음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세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면서 담대하게 살아갈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말씀은 우리가 이전에도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베드로 사도의 위로와 권면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굳건히 세우게 하려는 마음으로 성경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앞서 나눈 바와 같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목격했다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선포할 있는 유일한 고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뿐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상황과 형편 속에서 유일한 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시험을 이상한 당하는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있는 자로다 영광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1)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 사도는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악하고,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이 여전히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의인이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죄악과 죽음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승리, 영원한 새로운 나라를 가운데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세상을 통치하시기에 결국 모든 전쟁은 주님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과 더불어 영적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이 대장 되시기에, 우리 주님이 승리하시기에, 결국 우리도 모든 전쟁에서 함께 승리하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 사랑을 하다가 고난을 겪는 , 용서를 하다가 모욕을 얻는 ,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영광이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살인, 도둑질, 악행, 사기 이러한 일에 참여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참여함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는 일에 헌신하여야 하며, 가운데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라는 증거가 것입니다.

 

세상은 결국 끝에서 예수님의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것이요, 그들의 번영과 성공은 그저 재와 같이 날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의 일을 위해 고난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것이요, 참된 영광을 얻게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말씀을 통해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은 묵묵히 선한 일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영혼은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을 벗한 사람들은 자기의 욕심과 자랑을 위해 사랑합니다. 그들은 돈과 명예, 권세, 쾌락이 복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의 은혜를 얻는 사람은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정한 복을 얻는 길이요, 하나님이 없는 삶은 결국은 실패하는 삶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삶의 형편 때문에, 때로는 나의 신앙의 모습 때문에, 때로는 삶의 수많은 선택들 앞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복이 되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신가? 심지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가? 속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가? 나는 바른 길로 가고 있는것인가?

 

깊은 질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모든 질문에 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비유)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인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삶울, 나아가 우리의 모든 역사를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책임지시고 이끄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고난 가운데 있다 지라도 주님은 모든 것들을 궁극적으로 선으로 바꾸시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놀라운 믿음의 눈을 갖고 오늘도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