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날마다 진리를 바라보는 (2021.10.08.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후서 1:12~21)

 

베드로후서 1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자라

17   지극히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것을 들은 것이라

19   우리에게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매일 꾸준히 하는 연습은 힘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 입니다. 뇌에는 가소성이 있다고 합니다. 가소성이라는 것은 변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어린아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뇌의 성장이나 변화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제는 아예 정설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도 뇌는 꾸준히 발달될 있고, 좋아질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평생 발달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느 과학자가 조사를 했는데,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의 뇌를 살피니 속의 해마라는 부분이 보통 사람들의 평균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해마가 공간을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데, 오랜 기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부분을 강하게 훈련이 되었고, 이에 따라 부분을 담당하던 뇌도 커지게 것입니다. 꾸준히 하는 공부, 꾸준히 하는 연습이 바로 우리의 뇌도 바꾸는 것입니다. 비단 뇌뿐 아니라 우리의 전체가 그러합니다. 몸이 아주 왜소한 사람도 꾸준히 수십년 운동을 하면 예전 모습이 기억되지 않을 만큼 몸이 건장해지는 것을 우리는 있습니다. 꾸준히 하는 것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말씀을 읽고,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꾸준히 기도하고, 꾸준히 주님을 묵상하는 삶은 우리의 영적인 능력을 꾸준히 성장시킵니다. 순간 순간 살펴볼 때에는 우리의 모습이 여전히 그대로인 같고,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우리는 꾸준함을 믿어야 합니다. 꾸준히 우리가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 주님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 12절부터 15절까지는 이러한 신앙의 꾸준함에 관한 베드로 사도의 선포입니다.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지난 나누었던 앞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얻게 혜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경건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얻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관하여 또한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삶이었습니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여정이요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길임을 지난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선포 이후에 바로 선포된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진리 위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믿음의 여정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정을 아는 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곱씹고 반복하고 실천하며 나아갈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이것을 항상 생각나게 하려고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선포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믿음을 어떻게 굳건히 지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날마다 묵상하며 나아갈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 편지를 때에는 이미 죽음 앞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3~15 말씀은 자신의 육체를 장막에 비유하여 자신의 마지막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웠는데, 살아있는 동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일깨워서, 날마다 믿음의 길을 기억하고 걸어갈 있도록 돕고자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죽고 후에도 이처럼 날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갈 있기를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도 나누었지만 베드로후서 말씀은 무엇보다 영지주의 이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베드로의 편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꾸준히 주님의 말씀 앞에서 서고, 매일 꾸준히 우리의 믿음을 되새기며, 매일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이와 같은 이단의 공격으로부터도 우리를 지킬 있는 힘이 됩니다. 더불어 우리의 신앙 생활을 흔드는 끊임없는 악한 권세의 공격이 있을 있는데, 꾸준한 신앙 생활은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을 지켜내는 방패막이 되어 줍니다. 그렇게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매일 복음을 기억한 , 믿음을 되새기는 삶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와 같이 믿음 생활을 매일 기억해야 하는 두가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신앙은 사도들의 증언위에 터한 실제 사건을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6~18 말씀입니다.

 

16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자라

17   지극히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 사도들을 포함하여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이 철학이나 신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니요, 여러 생각들과 사상들을 합쳐서 만든 철학체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아무리 그럴싸 해보여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이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삶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질서를 가르쳐 주기 위해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지독한 절망이 우리를 감쌀 , 생존의 위협이 우리를 흔들 , 나아가 우리가 죽음을 대면할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소망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사람의 절망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상과 교리를 넘어서는 바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증언입니다. 사도들은 수많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리고 순교의 자리에서까지도 그들의 증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였다면,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그들은 믿음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듣고 만졌던 일을 증언하는 것이었기에 죽음도 그들의 입을 막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고, 예수님의 수많은 선포와 가르침을 들었으며,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분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이들의 증언에서 시작되었으며, 증언을 믿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신앙을 묵상한다는 것은 바로 증언을 듣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가 자기가 직접 경험한 변화산 사건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전하는 것은 교묘히 지어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것을 전하는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극히 영광 가운데에서, 자신이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셨던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던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와 같은 목격과 경험 위에서 증언하였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증언을 실제의 사건으로 믿고 진지하게 들을 때에 우리는 믿음을 든든히 세울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제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기적,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 믿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과 실제로 교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가 믿는 것이 철학이나 신화가 아니라 증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됨을 믿어야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믿음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것은 증언을 듣고, 증언을 믿음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생활을 위해 필요한 두번째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성령님의 조명 아래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19~21 말씀입니다.

 

19   우리에게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19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언은 구약의 말씀을 뜻합니다. 좁게보면 예언서 말씀들이요, 넓게 보면 구약 전체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크게 보면 신구약 전체 말씀을 뜻합니다. 말씀들은 모두 예수님을 향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치 어둠 속을 밝혀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말씀을 바라볼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우리의 샛별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게 되면 세상이 환한 낮과 같은 날들이 오게 것입니다. 그러나 전까지는 말씀이 우리에게 등불의 역할을 하게 것입니다. 말씀은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주님의 뜻을 드러내 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길을 비추어줄 것이요, 말씀이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것이며,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매일 믿음의 삶을 때에 무엇보다 말씀이 중심이 되길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 앞서 나누었던 사도들의 증언도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말씀을 때에 기억해야 하는 하나를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때에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저자가 되시기에, 성령님의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해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할 우리는 모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복음에 깊이 들어가게 되는 , 그것이 바로 성령님 안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 안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해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역사를 통해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오랜 세월 역사를 통해 성경을 바라보는 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고, 가르침이 오랜 세월 싸여 교회의 전통과 고백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역사와 공동체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끝으로 성령님 안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때마다 성령님께 지혜를 간구해야 함을 뜻합니다. 순간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주셔야 우리는 말씀의 깊은 세계로 들어갈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잃을 우리는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생의 끝자락에서 성도들에게 신앙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진리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도 아니요, 한번 깊어졌다고 해서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날마다 믿음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진리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첫째로 우리가 믿는 것은 그저 철학과 신화가 아닌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 앞에 ,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이 오늘 우리의 삶을 붙들어주고, 우리를 세워준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를 매일 주님 앞에 서게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날마다 말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바라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선포된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라보는 말씀, 날마다 성령충만함 가운데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길에 등불이 되고, 우리의 삶에 푯대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굳은 믿음과 말씀으로 주님께 매일 나아갈 , 우리의 삶은 날마다 주님과 더불어 승리하는 삶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