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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 그리스도의 길 (2021.10.22. 금요기도회 설교. 베드로후서 2:10~22)

 

베드로후서 2

10 (후반절)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사람들은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중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는 초대 교회를 괴롭히던 이단들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2장말씀은 이러한 이단들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에게 바른 길을 분별할 있는 분명한 기준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는지, 어떻게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있을 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단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의 분명한 특징은 교만함입니다. 오늘 말씀 10,11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0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말씀은 이단의 특징을 설명하며 당돌하고 자긍하고 떨지 않으며, 영광있는자들을 비방한다 선포합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설명하면 자기만 생각하고, 거만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까지도 비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온통 자기 자신만을 아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바로 우리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겸손함입니다. 우리 사람, 사람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삶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있음을 깊이 알고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인의 입술에는 감사가 넘치고,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는 겸손이 가득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면, 내가 나를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 주님을 생각하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내가 감사와 감격 안에 있는가, 불평과 불만 가운데 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나를 더욱 드러내고 싶은가, 아니면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기쁨과 평안함이 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자기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고,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해주시는 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사는 ,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기에, 사람 앞에서 굳이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 겸손과 감사가 가득한 모습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단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의 문명한 특징은 방탕입니다. 오늘 말씀 13, 14 말씀입니다.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특징은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라 선포합니다. 이는 아니라 대낮에까지 흥청대면서 먹고 마시면서 쾌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식사를 할때에도 성도들을 방탕한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성을 볼때마다 음욕을 품고 다가갑니다. 마음이 들떠있는 이들을 유혹하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웁니다. 이들은 이러한 성적인 죄악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탕의 특징은 으로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 삶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허락하셨는데, 몸을 그저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죄가 바로 방탕입니다. 이러한 죄는 자신의 아니라 다른 사람의 또한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사람의 몸을 소유하고자 하고, 사람의 몸을 이용하고자 하는 죄악이 바로 방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죄인들이 육체의 쾌락을 위해 몸을 이용한다면, 우리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이웃의 발을 씻어주시고, 자신의 발로 눈물과 탄식속에 살아가던 이웃을 찾아가셨습니다.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이웃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모든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삶의 방향이 분명히 다릅니다. 자기의 육체의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태도, 특별히 다른 사람의 몸까지도 이용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고, 형제, 자매로 대하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사랑을 합니다. 손으로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발로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입술을 사용하고, 자신의 생명, 삶의 시간들을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회를 위에 내어 줍니다. 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몸을 내어주는 ,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이단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와 멀리 떨어진 사람의 분명한 특징은 탐욕입니다.  15, 16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말씀은 선포합니다. 이단들이 걸어가는 길은 바른 길을 떠나서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길이다. 발람은 민수기에 나오는 선지자인데,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 거짓된 길로 걸어간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타고가던 나귀를 통해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발람의 길이란 불의의 , 재물을 사랑하다 불의를 저지르게 되는 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재물의 힘은 매우 큽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있으면 사랑을 받을 있을 것처럼 느껴지고, 재물이 있으면 생명을 지킬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재물이 있으면 우리가 참된 자유를 얻을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돈이 없는 삶은 노동과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삶입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매여 있는 삶입니다. 돈이 없을 우리가 느끼는 가장 어려움은 삶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날마다 자유를 위해 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차게 되면 우리는 오히려 돈이라는 우상, 탐욕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입니다.

 

19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찾아보니 조금 뜻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9   그들은 남들에게는 자유를 약속하면서 그들 자신은 부패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정복을 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정복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돈에 의한 자유를 추구하다가 결국 탐욕과 부패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에 정복을 당하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자유를 돈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8 32절에서 우리 예수님은 선포합니다.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탐욕을 지배하고, 진리를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나아가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20절에서 21 말씀을 살펴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다시 악한 길로 빠져 나갔음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이들을 보며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삼키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이 죄악의 길로 걸어간 것은 교만 방탕 탐욕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과 사랑과 진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앞에서 겸손하고, 주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의 몸을 내어주며, 주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는 ,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가운데 우리 예수님이 드러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참고>

20   만일 그들이 우리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중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