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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 (2022.07.17. 주일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자랑하는 자는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1.      우리는 지난 주까지 십계명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십계명 전에는 여호수아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구약을 오랜기간 나누었기 때문에 다시 신약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이번주부터 대략 4개월여간 나눌 말씀은 고린도 전서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초대 교회가 갖고 있었던 여러 어려움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움들에 대한 바울 사도의 응답이 바로 고린도 전서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듣다보면 우리가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복음이 무엇이고, 복음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전에 여호수아 말씀을 나누었을 때처럼 대략적으로 1주에 1 정도의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해당 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서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40)

 

4.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고린도 전서는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아가야랴는 지역의 주도로서 매우 번영했던 도시였습니다. (지도) 자연스럽게 문화와 종교가 발달하였고 동시에 쾌락과 욕망만을 추구하던 문화가 팽배했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2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무려 2년간이나 복음을 전하였고, 결과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5.      그런데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부흥하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앞부분에 있는 1 10절과 11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형제들아 글로에의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6.      바울은 편지를 당시에 에베소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글로에 집안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 교회에 관한 소식을 듣게 것입니다. 소식은 안타깝게도 교회가 다투고 분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어이없게도 우리는 바울 파다. 우리는 아볼로 파다. 우리는 베드로 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러면서 서로 당을 짓고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고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7.      사람이 분열과 다툼을 하게 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 중에 가장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교만입니다.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 내가 남보다 훌륭하다는 생각, 다른 사람을 깔보는 생각이 마음안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그때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와 같은 교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시작할 때에 이와 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 5 말씀입니다.

 

5   이는 너희가 안에서 모든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8.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엘리트가 많았습니다. 철학과 지식이 뛰어나고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은사를 경험하고,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부자도 많았을 것이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들을 이야기하며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변과 지식에 풍족하다라고 칭찬한 것입니다.

 

9.      그런데 그것이 독이 되고만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지혜롭고 똑똑한데, 저들은 그렇지 못한 같다. 내가 이렇게 영적인 은사도 많이 받고 하나님의 능력도 많이 받았는 , 저들은 아직도 영적 수준이 낮은 같다. 내가 이렇게 교회에 헌신도 많이 하고 수고도 많이 하는데 저들은 그저 왔다가 가는 같다. 이러한 마음들이 교회 곳곳에 있다 보니 분열과 갈등이 가득 차게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부흥도 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앙인들도 많았지만 정작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0.   바울은 이러한 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마음 아파했습니다. 교회의 분열과 다툼은 그저 교회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사람, 사람의 신앙이 무엇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을 그것을 분명하게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18~25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1.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은 가능하시면 암송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18, 22~25 말씀은 체크해두시고 외우시면 더욱 좋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믿는 믿음, 우리가 따르는 복음은 세상 사람들의 종교와 믿음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12.  우리가 먼저 세상 종교를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종교를 믿었습니다. 하늘에서 해가 뜨고, 비가 내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농사를 짓고 풍요로워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해를 띄울 능력도, 비를 내리게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양의 , 비의 신을 만든 것입니다. 이들에게 열심히 제사를 지내서 해도 뜨도, 비도 내리게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의 신도 만들고, 바다의 신도 만들고, 전쟁의 신도 만들고, 산신령도 만들고, 삼신할머니도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신들을 열심히 숭배함으로 자기의 욕망을 해소하였습니다.

 

13.  이러한 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위대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신의 능력, 신의 무서움, 신의 화려함 등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신을 숭배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입니다.

 

14.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하고 화려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거대하고 무서운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멋진 신화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상의 각종 지혜와 지식으로 신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을 믿으면 너도 모든 것을 얻을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 바로 종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신을 믿음으로 결국은 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종교를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15.  그런데 바울이 선포한 복음,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진리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오셨는데, 아들이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어떠한 화려함도, 어떠한 승리도, 어떠한 자랑도 없는 자리에서 초라하게 신이 죽고만 것입니다. 자리에서 하나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과 절망의 자리, 수치와 부끄러움의 자리, 패배와 죽음의 자리를 믿는 ,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입니다.

 

16.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매력을 주지 못합니다. 종교를 통해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종교처럼 믿는 것입니다. 나를 높이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지혜롭게 예수님만을 찾을 ,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는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기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가운데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을 봅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사랑하되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죄인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나를 높이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세우는 자리와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예수님은 이것을 다시 태어나는 , 거듭나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8.  바울은 반문합니다. 지혜 있는 자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잘하는 변론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결국 우리 자신을 높이려 하는 근본적인 바탕이 바뀌지 안는다면,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폐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19.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원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따르면 망할 같고, 십자가를 따르면 자신이 무너진 같고, 십자가를 따르면 패배와 절망이 다가올 같은데, 십자가를 믿음으로 따르기로 사람,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20.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구합니다. 둘은 다른 같지만 같은 것입니다. 신의 능력, 신의 지혜, 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능력 있는 무당을 찾아가는 , 화려하고 멋진 성전을 가진 종교를 찾아가는 , 삶에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공동체를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포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끝까지 순종하여 비참하게 죽은 예수 그리스도, 끝까지 사랑하여 완벽하게 배신당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기꺼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비위가 거슬리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들보다 강합니다.

 

21.  우리가 믿는 신앙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예수님을 믿는 것일까요?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고, 이렇게 경제가 발전된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표적을 구하는 것이요, 지혜를 구하는 것이라면 저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궁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위안을 받고자 하면 상담사를 만나면 되는 것이요, 세상의 지혜를 얻고자 하면 수많은 책들과 선생들을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통해, 함께하는 성도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을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2.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고, 오늘 하루 행복한 삶과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근본적으로 삶의 참된 의미가 되는 .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인 , 진리는 없는가를 묻는 것이 바로 진리를 향한 우리의 물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로 응답하십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사랑이 있다. 사랑하되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한 사랑이 있다.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너를 온전히 새롭게 하는 사랑이 있다. 사랑으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껏 나를 향한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 가족과 이웃을 향한 , 세상을 향한 삶을 바꾸는 자리에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높아지는 자리에서 낮아지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고, 자리에 참된 기쁨과 평강과 정의가 있고, 자리에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23.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 거룩한 무리 (불속 어머니)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자랑하는 자는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24.  바울은 선포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를 보십시오. 세상의 기준으로 지혜로운 사람도 많지 않고, 능력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학벌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약한 이들을 선택하셔서 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때에는 천한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가진 자들, 있는 자들을 무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방식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기를 뽐내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없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드러낼 없습니다.

 

25.  바울을 이어서 선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 예수께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구원이 되셨습니다. 십자가 은혜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시고, 십자가만을 드러내시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26.  오늘 말씀은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갈등하고 분열하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편지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십자가의 도를 깊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종교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가 나은 사람인가, 누가 높은 사람인가, 누가 옳은가를 두고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27.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사실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나를 위한 하나님을 찾을 하나님을 위한 나를 구할 때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신앙마저도 우리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할 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낮은 자리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모욕과 치욕의 자리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미련해보이고 거리끼는 자리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용서와 사랑의 자리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예수님의 빛과 소금이 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위해 태초로부터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일을 통해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시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의로움이요, 하나님의 거룩함과 구원입니다. 놀라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놀라운 주님의 보물과 같은 존재들이 되실, 참으로 귀한 성도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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