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되십시오. (2022.09.04. 주일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6장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 어린시절 함께 교회에서 동고동락했던 친한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신앙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참 인기가 많았던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지금은 피부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개인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친구의 전문 영역이 바로 탈모입니다.
2. 머리를 심어주기도 하고요, 머리에 문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탈모가 진행되기 전에 약물로 많이 치료를 해서 머리를 보존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홍보가 중요해서 유투브에 여러가지 상담들도 올려 놓기도 합니다. 그 친구가 보고싶어서 가끔 저도 그 영상들을 보곤 하는데, 그 내용 중에 마음에 딱 와닿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고백하기를 자기도 유전적으로 탈모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탈모가 있었고, 자기도 탈모가 있는데, 열심히 약을 먹고 버티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약을 추천해주고 방법을 추천해주는 데 정말 진실된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의사가 직접 자기 몸을 치료하면서 권하는 것만큼 설득력 있는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3. 이처럼 누군가에게 무언가 권유를 하고, 설득을 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이 그 주장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는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서 남에게 설득하려고 하면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목사인 제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전하면서, 실상은 돈을 더 사랑하고 자기 명예를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만큼 설득력 없고,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4. 그런데 오늘 말씀에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 고백하는 자신들의 모습, 나아가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진리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만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그 부끄러운 현실을 짚어 내었습니다.
5. 다같이 1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6. 고린도 교회 성도 간에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7,8 절 말씀에 보면 그 일이 속이는 일이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경제적인 다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성도 간에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이 일을 고발하고, 소송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잘못된 일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이 일이 교회가 교회 다움을 드러내지 못한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7. 사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갈등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 소송을 하고, 재판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재판은 오히려 갈등 때문에 서로를 때리고 죽이는 일을 합리적으로,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사회 제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것을 교회답지 못한, 성도답지 못한 잘못된 일이라 지적했던 것일까요?
8. 먼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법정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끔씩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판이 불공평하게 진행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그 정도가 심하였습니다.
9. 고대 로마 네로 황제 시대에 활동한 ‘페트로니누스’라는 사람이 쓴 풍자소설 사티리콘 이라는 책에 따르면 당대의 재판은 마치 경매와 같았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귀족 배심원들이 자기의 판결권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판이 돈과 권력에 의해 다 결정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디온 크리소스토모스(황금의 입)라는 철학자도 고린도에 판결을 굽게 만드는 수많은 변호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10. 그렇기에 바울은 1절 말씀에서 불의한 자들 앞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냐 되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판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자신의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이 돈과 권력으로 재판장을 매수하고, 이를 통해 상대의 것을 빼앗겠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11. 오늘 말씀은 지지난 주에 나누었던 5장의 말씀에 곧 이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5장의 말씀에 바울이 음행을 엄히 비판하였던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붓 어머니와 결혼한 성도와 그 모든 일을 알고도 눈감아 주었던 교회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돈이 걸려 있었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의붓 어머니와 결혼을 하였고, 그 유력한 성도의 도움을 얻기위해 교회가 이 일에 침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하나님보다 돈을 먼저 선택했던 결과 이러한 음행을 용인했던 것입니다.
12. 그런데 오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삶의 기준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며, 삶을 결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다 하지 않고, 내 권리라고 해서 다 찾지 않으며, 내가 표현할 수 있다고 해서 다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기준을 힘과 돈에 두지 않고, 내 자신에게 두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13.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놓친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인 갈등이 생기고, 자기가 손해보는 일이 생기자 ‘하나님을 제끼고’ 곧장 자기 힘과 능력과 권세로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고자한 재판이 공정하게 정의롭게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재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힘과 돈으로 연약한 사람을 짓밟는 재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재판이 끝난 후에 재판에서 진 성도는 크게 무너지고 상처받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크게 가슴 아파했던 것입니다.
14.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깨우치고자, 놀라운 비밀 하나를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준이 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말씀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기준은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기준을 세우십시오 -> 기준이 되십시오)
15.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게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주님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주님 닮아가는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주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심판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똑바른 추를 가지고 물건의 무게를 달듯이, 우리의 모습이 세상 사람 사람들 앞에서 온전한 모습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16. 바울은 그 비밀을 2절, 3절 말씀을 통해 선포합니다.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17.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주님과 더불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는 놀랍게도 천사를 판단할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는 그 기준에 합당한 삶,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의 삶을 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십계명 말씀을 통해서도 그것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사인 것입니다.
18. 그렇기에 우리의 모습은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은 돈과 권력과 자기를 높이는 일과 쾌락과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살아가지만, 그 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가운데에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어떠한 삶일까요?
19.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20. 이것은 무기력하게 손해를 당해라, 불의를 당해도 눈감아라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네 앞에 있는 사람을 네 이익보다 더욱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위해 때로는 용서하고, 때로는 참아주고, 때로는 포용해주고, 때로는 손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 사람을 위한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사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 사랑을 해 주었을 때, 그 사람이 자기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그 사랑으로 그는 교만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사랑을 해주었을 때, 그 사람이 자기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22. 우리가 베푸는 사랑은 늘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은혜를 베풀고, 용서를 베풀고, 손해를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것을 감사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더욱 교만해지는 것을 보면 크게 낙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언젠가 자신의 모습을 진실로 깨닫게 된다면, 자격 없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어쩌면 매우 적은 확율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방법을 조심해야 하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가스라이팅) 그러나 궁극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그러한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그러한 선택을 할 때 우리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따라서 그러한 사랑을 베풀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그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23. 성도 여러분, 세상은 돈으로 힘으로 이기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상대가 나보다 돈이 열배가 많으면 질투하지만, 백배가 많으면 두려워하고, 천배가 많으면 그를 위해 일하고, 만배가 많으면 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상은 돈과 권세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그것으로 상대의 존경과 사랑을 얻어내고, 그것으로 정의를 이루어낸다고 선포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재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24.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님이 선포하는 진리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이치는 이와 정 반대에 있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고, 생명으로 죽음을 이기며, 사랑으로 죄를 이기는 세상입니다. 오른빰을 때리면 왼뺨을 대고, 겉옷을 빼앗으면 속옷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게하면 십리를 가주는 것입니다. 용서하되 7번씩 70번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상대를 압도하여, 상대 또한 사랑하는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명령하셨습니다. 좁은 길로 들어오라 명령하셨습니다. 썩어져 죽는 밀알이 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 길에서 생명이 피어나고, 영광이 드러나며, 하나님이 일하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 교회의 성도간에는 더욱 이처럼 주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25. 성도 여러분, 주님이 보여주신 이 길은 사람의 힘을 할 수 일이 아닙니다. 돈과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용서로 헌신으로 포용으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 충만한 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과 용기와 결단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날마다 주님을 붙들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항상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귀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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