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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식 (2022.09.18.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8장 1~13절)

 

고린도전서 8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분밖에 없는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1)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지식으로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의 갈등을 가져온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2.      그것은 고기 먹는 문제였습니다.

 

3.      당시에는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고기가 여러 신들의 신전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제우스, 헬렌, 아폴로, 포세이돈 등등) 그리고 신들을 섬기던 많은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전에 고기를 제물로 바쳤고, 그렇게 바쳐진 고기를 유통하여 먹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신들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4.      그런데 이러한 고기를 먹어도 되는 문제가 고린도 교회 내부에서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쪽의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신들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을 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는 이미 부정한 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다른 쪽의 사람들은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애초부터 이방 신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들이기 때문에 신들에게 고기들이 바쳐졌다 하더라도, 실제로 고기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고기를 가지고 무엇을 했든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기에, 그냥 이것은 고기일 뿐이라 주장하였습니다.

 

6.      두부류의 사람들은 이처럼 고기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마다 죄를 짓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7.      바울은 부류가 고기를 먹는 문제를 두고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한 대답을 편지에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문제를 풀어갈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8.      오늘 말씀 1~3 말씀입니다. (새번역)

 

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9.      바울은 고기 문제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들을 판단할 ,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10.  우리 모두는 각자 지식이 있고, 그에 따른 의견이 있습니다.  사실 바르게 아는 , 아는 ,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이 갖고 있는 함정도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11.  문제에 대해 바울은 2절에서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지식만 앞세우는 사람은 진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가 중요하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식을 바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는 지식에 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식의 좋은 만을 생각합니다. 지식엔 힘이 있기에 지식은 양면의 칼과 같습니다.

13.  지식을 사용하면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고, 빠른길로 인도하고, 도움이 되는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도 하고,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되면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힘도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가 무식한 사람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똑똑한 사람이 잘못된 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그때 지식은 악에 봉사하는 지식이 되고 맙니다.

14.  한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답만 하면 라는 말의 약자입니다. 단어처럼 지식이 단단하게 굳어져 자기 확신으로 변해버린 사람은 지식으로 자기를 해치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지경에 이릅니다. 있으면 자기 지식대로 통제하려고 하고, 통제가 안되면 정죄하고 비난하려고 듭니다. 결국 지식으로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으려 드는 것입니다.
 

15.  그렇기에 참된 지식은 지식이 무엇인가를 함께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식도 그저 수단에 불과할 , 그것이 목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식도 언제든 내려놓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6.  고린도 교회의 이야기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17.  바울은 고기를 두고 의견 대립을 하고 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먼저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을 말하였습니다. 4~6 말씀입니다. (새번역)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5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같습니다.

6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18.  바울 세상에 신은 하나님 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 이런 신들은 원래부터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 것입니다. 모든 자연과 만물은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식입니다.

19.  이렇게 따지면, 바울은 앞서 나누었던 번째 부류의 의견,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신들은 그저 사람이 만들어 것이기에 고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의견을 냅니다. 7~13 말씀입니다.

7   그러나 누구에게나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4)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20.  바울은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포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이 헛된 신이라는 것을 배워도, 그것이 완전히 와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상 숭배의 문화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여전히 우상이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여전히 다른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가 꺼림직 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면 마음과 행동이 서로 엇갈리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는 거리낌이 있는데, 겉으로만 고기를 먹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1.  그런데 이러한 일이 익숙해지면, 다른 선택을 때에 마음의 거리낌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분명한 죄가 되는 일인데도, 양심의 거리낌을 무시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짓 자유가 사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걱정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 양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있도록,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지식적으로, 교리적으로 맞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의 믿음과 신앙의 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22.  같은 성도를 깊이 배려하고, 배려를 위해 자기 지식을 잠시 내려놓아주는 사랑이 필요함을 선포한 것입니다. 결국은 상대를 위해 기다려주는 , 자기 생각을 멈춰주는 , 모름의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23.  (곱셈, 5*5 배웠습니다.) – 나의 모름의 자리는 사람이 성장하는 자리가 되고, 나의 기다려줌은 그의 선택의 자리가 되고, 나의 물러남은 그의 꿈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사랑을 위한 지식입니다.

 

24.  우리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모름을 내어 주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사랑을 위해 우리에게 배려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실수하는 길로 간다고 할지라도 기다려주시고, 그것을 고쳐서 작품을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섬김과 사랑도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고, 그것을 통해 놀랍게 주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서 사랑하시는 ,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길로 나아갑시다. 진정한 지혜와 지식을 통해, 복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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