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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2022.09.25. 주일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9장 19~23절)

 

고린도전서 9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것은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같이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것은 아무쪼록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1.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고린도 교회에 고기 먹는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방 신전에서 제사에 사용되었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를 두고 교회 안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2.      이에 대한 바울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신들에게 드려진 고기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방신들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아무리 제사에 사용되었더라도 그것이 고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고기를 먹는 때문에 자기 양심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고기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이 바울의 선언이었습니다.

 

3.      바울은 상황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매우 중요한 원칙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지식과 자기 뜻마저 내려놓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말씀은 선포하였습니다.

 

4.      오늘 말씀은 지난주의 이야기에 이어져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자기의 삶을 통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 앞부분의 4~6절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5.      바울은 아시아 전역과 유럽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와 같이 순회하며 철학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돈을 받는 것이 당시에 당연한 풍습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말씀을 보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대가를 지불하라는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6.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돈을 벌고, 돈을 가지고 전도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가족들도 함께 다니지 않았고 온갖 수고와 어려움을 홀로 견뎌내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7.      바울이 이처럼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들을 자기 스스로 견뎌낸 것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2 말씀입니다.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8.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권리를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기를 원했습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10.  하나님을 알지 못해 죄악 가운데 살아가던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죽음으로 걸어가는 삶을 영원한 생명으로 걸어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헐렸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우리의 삶이 복으로 가득 채워졌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11.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대가를 받게 되면 자칫 사람들이 오해할 있을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사람이 그저 자기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지식과 가르침을 전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하나도 진실되게 다가오지 않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돈을 주고 사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을 위해 구원을 위해 돈과 제물을 바치던 당대 종교들과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두가지 모두를 걱정하며 어떤 대가를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자신이 진실로 중요하게 생각한 복음 전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받을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바울은 18 말씀에서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18   그런즉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2.  바울은 오히려 자기에게 있는 권리들을 쓰지 않는 ,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자기가 받고 있는 상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할 아는 , 이것이 진정한 보상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3.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바로 우리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 5~8절까지 말씀입니다.

 

5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4.  바울이 가졌던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선물로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자기를 낮추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어서도 낮은 , 낮은 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십자가의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15.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포기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에 길을 기꺼이 따라간 것입니다. (앎을 비워내는 , 권리를 포기하는 - 사랑)

 

1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을 보면 그러한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의 새번역 버전입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17.  바울은 고백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입니다. 누가 시켜서, 또는 강제로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만날때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이방인들을 만날 때엔 이방인 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엔 믿음없는 사람같이 되었고,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날때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모습의 자리에 기꺼이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저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음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18.  바울은 분명한 목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것을 위해 얼마든지 자신을 내려놓을 있었고, 자신을 포기할 있었으며, 다른 이에게 자신을 맞춰줄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비워낸 사람이었습니다.

 

19.  오늘날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권리를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살아라라는 메시지는 매우 많지만, ‘ 자신을 포기하라라는 메시지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오늘날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20.  지난 역사동안 우리는 헛된 것들에 헌신하다가 사람이 소외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수십년간 일만 하다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잃어버린 사람들, 맡겨진 의무를 감당하다가 정작 자기 인생은 하나도 돌보지 못한 사람들, 사람들의 눈치만 보다가 정작 자기의 뜻을 하나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의무에 치여 살다가 정작 참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많이 쌓이다 보니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1.  자신을 찾아라. 답게 살아라. 권리를 찾아라. 인생을 즐겨라. 이러한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나를 찾아서 헤메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기 대한 관심으로 삶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찾는 것이 인생의 가장 목표가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헌신하는 삶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22.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 속에서 정말 우리 자신을 찾을 있게 되었을까요? 홀로 자신을 찾겠다고 나선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세상의 먹잇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미디어는 우리에게 가치관과 판단을 주입하려 합니다. 세상의 유행과 광고들은 우리에게 취향과 욕망을 주입하려 합니다. ‘ 다운 중요하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다운 것을 주입하려는 것이 바로 세상의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답게 살아가려 하지만 정작 유행에 따라 살아가고, 욕망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3.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진짜 나를 찾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존재는 움켜쥠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어줌으로 포기함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어주는 사람이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만날때엔 유대인처럼 하였고, 이방인을 만날 때엔 이방인처럼 하였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을 만날 때엔 믿음이 강한 사람처럼 만났고, 믿음이 약한 사람을 만날 때엔 약한 사람처럼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은 전혀 줏대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이 진짜 자신을 찾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24.  귀한 성도 여러분, 사랑의 세계로 들어갑시다. 내어주고 섬겨주는 , 이를 위해 때로는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삽시다. 그것은 우리를 잃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짜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처음 우리가 창조되었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법을 따라갈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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