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2022.10.16. 주일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고린도전서 12장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 교회를 다니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관하여 듣게 됩니다. 또 여호와라는 이름도 듣게 되고, 주님이라는 고백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이름들이 많다보니깐 교회에 신이 많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아니면 하나님을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부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듣게 됩니다. 대부분 그려려니 하고 익숙해져가곤 합니다.
2. 그래서 잠깐 이 이름들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구약의 유대인들은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학자에 따라선 야훼라고 불렀다도고 합니다. 그러니깐 하나님, 여호와, 야훼 다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도 불렀습니다.
3.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2000년전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훗날 이것을 정리해서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겐 보통 주님이라고 할 때에는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40일이 지나고 승천하셨습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고 선포합니다. 먼 우주가 아니라, 이 세계를 초월한 하늘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우리를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또 다른 인격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성장시키고, 예수님 닮아가게 합니다.
5. 정리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이 세분은 각각의 인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셋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셋인 하나님이 바로 기독교가 고백하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 부릅니다. 이것은 사실 이해로 받아들이기엔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6. 오늘 말씀을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한 것은, 이 세 삼위 중 성령님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오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 3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7.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을 멈추고,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게 하는 일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예수님을 믿게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는 일을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8.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2000년전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한 사람을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 분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하였는데, 우리는 그 일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준 일이라 믿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이 3일만에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였다고 증언하였는데, 우리는 그 증언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다 믿고 있으며, 그 분이 내 삶을 다스리고,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믿습니다. 그리도 그분이 이 세상이 끝날 때에 다시 이 세상에 내려오실 것이며, 우리 모두는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9. 이 모든 이야기들은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동화 같은 이야기,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과학적으로 어느것 하나 설명가능하지 않습니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우주 어디에도 신은 없었다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하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썼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리를 설명하면 아무도 공감을 못하더군요. 정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들으면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는 것입니다.
10.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도 이 이야기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바울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이미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비난과 조롱과 박해였습니다. 당대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비웃고 거짓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11.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부활의 증언을 믿게 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이 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사도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령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로 하셨다면, 우리 성도님들 안에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고, 듣지 못햇던 것을 듣게 되었으며,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 그래도 성령님의 은혜로 놀라운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12. 거꾸로 생각하여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싶다면 성령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 생각 안에, 영혼 안에 임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실 때 예수님에 관한 믿음이 싹트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13. 그런데 이러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을 넘어서는 놀라운 일들을 시작하십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은사와 열매로 설명합니다.
14. 먼저 성령의 열매란 우리 내면의 성품의 변화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 말씀에 보면 성령의 열매를 선포합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면 이처럼 우리의 인격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실로 예수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인격의 성숙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15. 성령님께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또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사(카리스마)를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라는 것은 쉽게 설명하면 선물로 주시는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능력을 선물로 주십니다. 오늘 말씀 4절부터 11절 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10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11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16.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겐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엔 굳은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병을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예언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겐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겐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17. 로마서 12장 6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은사의 종류가 몇가지 더 나옵니다.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의 은사,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은사, 리더십을 갖게 되는 은사, 자선을 베푸는 은사 등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18.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가진 능력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갖게 하시고, 나아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까지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작은 예수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신 그 놀라운 일들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19.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성령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나서 이 은사와 기적들을 마치 자기의 능력인양 착각했던 것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특별히 방언을 했던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들을 보였습니다. 방언이란 기도를 깊이 할 때에, 성령님의 능력이 그 사람안에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가슴(몸)이 뜨거워지고, 깊은 몰입을 하게 되며, 놀라운 감격과 감동을 느끼게 되면서, 성령님께서 입술을 통해 하늘의 언어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오랜 시간 깊이 기도할 수 있고, 또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또 오늘 말씀처럼 방언을 통변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그 뜻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경험했으며, 특별히 기도에 열정적인 교회에선 이러한 일들이 더욱 자주 일어납니다.
20. 방언을 경험해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렇게 듣기만해도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의심을 품게 됩니다.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방언을 경험한 사람은 이 방언이 있어야 진짜 성령을 체험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방언을 받고 나면 자신 영적 권세를 얻은 것 마냥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렸던 수많은 은사들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특별해진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21.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을 경험한 사람들도 이러했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교회안에 묘한 위화감이 조성되고, 영적 계급과 같은 것들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모든 은사는 섬김을 위해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은사는 도구일 뿐이지, 신앙의 척도가 아닙니다. 모든 은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더욱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았으면 더욱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섬김과 나눔의 은사를 받았으면 더욱 열심히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해질 것도, 또 질투할 것도 전혀 없음을 바울은 전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더욱 겸손하게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22.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은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들을 대하는 태도 와도 연결되어 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위한, 이웃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더 많이 가졌다고 교만하지 않고, 더 적게 가졌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 은혜를 경험하고, 더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게 된 것으로도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더 섬기고 사랑하라는 뜻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재정이나 삶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나 지식이나 학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지위나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거꾸로 부족한 것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하야 할 것은 주님께서 주신것 대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 그것이 주님의 뜻을 가장 잘 이루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은 우리의 생각과 가치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 예수님 닮아가는 삶,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23.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성령 충만하여 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담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 닮아가길 소망합니다. 인격적으로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또한 얻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상황과 형편과 인격과 능력에 따라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하길 소망합니다. 각자 작은 예수님이 되어서 계신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의 열매가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 많이 맺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