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022.11.06. 주일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5장 12~20절)
고린도전서 15장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나,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2. 그러나 이 부활은 사람의 머리로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부활 소식을 들으면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3. 첫째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시신을 숨기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사실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무덤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환상을 보았거나,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안에서 의미적으로 살아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주장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퍼져 있던 주장이었습니다.
4. 그런데 사도들은 이 세가지 주장을 모두 적극적으로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가 만났습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언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전했던 것입니다.
5. 고린도전서 15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에도 이와 같은 고백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베드로를 만나주시고, 열 두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오백여 형제자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돌아가셨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만나주셨으며, 사도로 불리는 모든 이들과 심지어 저에게까지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적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가 완전히 변하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6.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예수님 직접 만났다는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성경에서 무려 5번이나 언급되는 데, 고린도전서에서 두 번, 갈라디아서에서 한 번, 사도행전에서 3번 언급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제자들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인생 전체를 바꾸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7.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하루이틀만 지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평범한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사건이 됩니다. 내 삶의 가치관, 내 인생의 방향, 내 마음의 길을 모두 바꾸어 버리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사람을 만나보면, 누구나 자기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했던 사건들이 몇가지씩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다 보면, 그 사건을 여러 번 말씀하시고, 그 사건에서 느낀 마음을 계속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사건이 사람을 만들어갑니다.
8. 우리 그리스도교 역시 사건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어떤 깨달음이나 지혜, 어떤 교리나 사상 위에 세워진 종교가 아니라 한 사건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의 사건들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특별히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그들의 인생 전체를 뒤바꿨을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는 일이 되었습니다.
9. 만일 실제로는 부활이 없었고, 그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종교를 세우고자 했다면, 그들은 굳이 사람들이 믿기 힘든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을 중심으로 성지를 만들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종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식이요, 사람들의 반박도 적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반대들을 맞닿뜨리면서도 부활을 선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적대하던 바울까지도 뒤바꾸는 일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포하였습니다.
10.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부활을 믿는 않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고, 그저 영혼의 부활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일종의 환상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부활의 의미만을 받아들일 뿐, 육체가 부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이러한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12절부터 15절 말씀입니다. (새번역)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1. 바울은 고백합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모두 거짓 증언하는 자들로 판명될 것입니다. 바울은 앞서 1~11장까지 부활을 증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거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 모든 이들이 거짓말하는 사람들이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환상도, 깨달음도, 교리도 아닌 실제 경험한 사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한 것입니다. 부활이 깨달음이나 환상이 아닌 사건이요, 현실이요, 경험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12. 부활이 이처럼 깨달음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경험한 사건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신앙이 바로 현실을 뚫고 가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13. ‘정신승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의 여우 이야기가 바로 정신승리를 잘 설명해줍니다. 여우가 지나가다가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먹고 싶어 폴짝 폴짝 뛰었는데, 결국엔 포도가 입에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여우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꺼야.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자기 생각으로 왜곡해서 합리화하는 것이 바로 정신승리입니다.
14. 만일 우리가 믿는 부활이 그저 환상이요, 깨달음의 차원이라면 그것은 바로 정신승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망해도 이게 나에게 가장 복이 되는 일일꺼야. 지금 내가 실패해도 이게 내게 가장 좋은 길일꺼야. 내가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저거 얻었으면 오히려 나한테 안좋았을꺼야. 실체가 없고, 그저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신승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는 옛날 맑스가 말했던 것처럼 인민의 아편이 될 뿐이고,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노예의 도덕에 불과할 뿐입니다. 부활이 그저 가르침이요, 깨달음이요, 환상이라면, 결국 냉혹한 현실을 감추는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5. 바울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16절에서 20절까지 말씀입니다. (새번역)
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6)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16.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이요, 그저 죄 가운데 있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이거 다 속임수일 뿐이요, 우리의 현실도 하나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도 그저 소멸되었을 뿐 일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이 실제가 아니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부활이 그저 의미로서만 다가온다면, 그저 상징으로서만 다가온다면, 그저 선언으로서만 다가온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권선징악의 동화 이야기를 보다가 현실을 경험할 때의 충격과 같은 일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모든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분명히 살아나셨고 현실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분명히 경험했습니다.
1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님의 몸의 부활과 지금도 살아계심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깨달음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 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18.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에서 하시는 일을 선포합니다. 24~26절 말씀 (새번역)
24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위와 모든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잠깐 불의가 다스리고, 죽음이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님은 당신의 통치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거짓 통치와 권위와 권력을 폐하고, 온 세상을 주님의 다스림 안에서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죽음을 이 세상에서 추방하실 것입니다.
20.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들의 증언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이 정의를 이루어가시고, 생명을 회복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거 우리의 정신 승리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주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31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선포합니다.
3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12)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32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13)"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34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21.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현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건을 증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정의와 생명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이 죽음에 이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사실은 잘 먹고 잘 마시는 삶이 가장 유익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현실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22. 또한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 또한 부활하게 될 것임을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다시는 죽지않는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될 이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마치고 바울은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23.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죄와 율법의 심판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죽음에서 부활생명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의 지배에 놓여있지 않게 되었고, 생명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선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24.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은 그저 신화적인 이야기이거나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의미나 깨달음으로만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사도들이 직접 경험했던 사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부활은 실제요, 현실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진실로 이 세상을 정의와 생명의 길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25. 이 놀라운 부활을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 통치를 받아들이고, 이 땅 가운데에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둠 가운데 빛을 드러내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고, 불의 가운데 정의를 드러내고, 사랑을 나누는 귀한 삶을 사시길 소망합니다. 때로는 그 길이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 할 지라도 끝까지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가시길 소망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통치가 우리를 통해 우리의 삶 곳곳에서 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님 다시오실때에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기쁨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