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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광복 (2013.8.18 주일오후설교)


이사야 5장 1-7절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1)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지난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된 68년된 광복절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사실 하루 더 쉬는 공휴일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을 몸소 맞이하신 우리 교회 어르신들은 이런 광복절에 어떠한 기분이 드시는 지 궁금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책을 통해서,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통해서, 티비를 통해서, 어르신들의 말씀을 통해서 듣는 예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 참 놀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젯밤에도 새마을 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정말 정말 가난한 농촌 마을 사람들이 정부와 힘을 합쳐 마을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직접적으로 옛날에 살진 않았지만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단 티비나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어르신들의 깊게 패인 주름을 보고, 두툼한 굳은 살이 배인 손바닥을 보면 아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또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아 우리나라의 역사가 참 힘들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특별히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고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18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외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면서 참 어려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청나라, 일본 같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청나라와 일본은 우리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우리나라에서 치뤄 무수한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죽어갔습니다. (여기 옆에 있는 미군기지 자리는 원래 청나라 군대가 들어왔다가, 청나라 군대를 쫓아낸 일본 군대가 들어오고, 그 일본군대를 몰아낸 미국군대가 있게 된 기지입니다.) 러시아마저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결국 1910년 우리나라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다스리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고, 갖가지 명목으로 우리나라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였으며,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우리의 신앙의 자유마저도 빼앗아 갔습니다. 앞에 보이는 남산에는 커다란 일본의 신사가 건립되었습니다. 외세의 침략은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아 갔고, 철저하게 가난한 삶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고, 한 맺힌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궁핍해진 삶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가고, 배려와 나눔의 정신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예전 언어중에는 유난히 약한 사람들을 비하하는 발언이 많습니다. 고아들을 후레자식이라 비하하였고, 장애인들을 병신이라 비하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뱅이, 거렁뱅이로 비하하였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군림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스스로 조선놈이라고 비하하며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혹은 조선사람은 맞아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노예처럼 취급되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세의 침략이 끝나자 곧바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며 우리는 전쟁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전쟁 기념관 앞에 있는 국군이 형과 북한군인 아우가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동상은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이념으로 갈라져서 총부리를 겨누고 형과 아우, 부모 자식 간에 동족 상잔의 전쟁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로인해 수많은 부모형제를 잃었고, 고향을 떠나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수많은 우리의 형제들, 아들들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들을 보면 광복은 비록 이루었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상처와 아픔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거대한 역사 속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각각 나름대로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러한 우리의 역사와 참으로 비슷합니다. 그들은 요셉이 죽은 뒤 오랜 세월 당대의 최고 강대국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갔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난과 참 비슷합니다. 이집트는 피라미드나 신상과 같은 큰 건축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집트는 이러한 거대 건축물을 짓는 현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채 묵묵히 짐승처럼 일하였고, 그 노역의 고통 가운데 탄식하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려먹는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진다고 생각하여, 사내아이들을 낳자마자 죽이라는 엄청난 일들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식을 잃은 고통으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노예로서 철저히 짐승과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탄식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10가지 재앙으로 굴복시키시고, 뼛속까지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민으로 선포하여 해방시키셨습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 그들을 다듬으시고, 가나안 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에서 자신의 땅을 가진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을 통하여 크게 번성한 나라를 허락하여주셨습니다. 그들의 첫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킴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짓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가운데 살아가는 영광을 허락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하나님은 이것을 포도원을 지으셨다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2절 초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이라 비유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컸는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픔을 돌보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아픔가운데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가지고 예배당에 나왔고, 하나님께 회복을 간구하였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함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고통 받는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셨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이었던 이동휘는 이 나라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100만명만 된다면 이 나라는 반드시 독립될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이처럼 선각자들, 배움의 길에 먼저 나선 이들 중에는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이들을 섬기기 시작한 사람들 중에 믿음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하나님의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해방 이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세워지고, 6,25전쟁이 일어남으로써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오히려 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70년대 80년대에 교회는 놀랍게 성장하여 전 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될 정도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와 발맞추어 대한민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절대적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변하였고, 세계 속에서도 손꼽히는 성장을 이루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성장 뿐 아니라 동시에 민주화를 이루어 내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가나안 땅의 부강한 나라의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일제 치하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에서 동아시아의 발전된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가난이 가장 큰 어둠이었고, 억압이 가장 큰 어둠이었던 이 땅이 부강함이라는 광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놀라운 나라의 발전과 교회의 성장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 모든 성장과 번영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의 처절했던 가난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자들을 돌보시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높은 지위와 권세를 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조그마한 상가에서, 천막에서 시작된 작은 교회를 놀랍게 성장시켜 주시고, 나아가 크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여 주심을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간구를 이루어주셨다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이러한 과정에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낮은 마음,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을 해결해주셨다 해서, 하나님은 돈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셨다 해서 하나님께서 권세나 지위가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흥을 허락하셨다 해서 하나님이 큰 성전은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높은 권세나 지위를, 큰 성전과 많은 수의 성도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그 자체라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나 우리는 쉽게 교만해졌습니다. 우리의 욕심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 뒤에 교묘히 감추어 두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만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기기보다는 경쟁하여 이기고, 승리하는 법만을 추구하였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손해보고, 약한자가 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한귀로 흘려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하던 시절과 참으로 비슷합니다. 2절과 7절을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주시고 놀랍게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주시고, 나아가 크게 번영을 허락하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그들의 번영을 우상을 숭배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활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선물을 허락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욕심이라는 헛된것만을 추구하였습니다. 나아가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포학을 행하고, 약한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왕조의 언약과 예루살렘의 성전이 있으니 안심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예물을 잘 드리기만 한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잘 관리하기만 한다면, 정해진 절기를 잘 지키기만 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부강할거라 착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좋은 교회건물과 지속적인 성장, 예배와 헌금과 같은 신앙생활만 잘 한다면 계속해서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도 성장할 것이라 착각한 것과 놀랍게 닮아 있습니다.


이렇게 철썩같이 예루살렘 성전만 믿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단의 결단을 내리십니다. 이들이 믿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다윗의 왕조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하신것입니다. 다같이 5,6절을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에게 남유다를 바벨론에게 멸망시킴으로써 그들의 우상과 잘못된 생각을 무너뜨려버리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시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언서를 읽으며 우리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남유다처럼 전쟁이나고, 기근이 발생하고,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두려와 멸망이 두려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전 어떤 자칭 예언자는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날것이라 윽박지른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큰 차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망했어야 할 우리, 이미 죽고 이미 무너졌어야 할 우리를 여전히 은총가운데에서 기다리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 착각하는 성공과 욕심, 자랑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못박을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우상과 우리의 죄악들 역시 십자가에 못받을 것을 요청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해방과 부유함은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나누기 위해 주신것임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광복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광복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활생명입니다. 모든 고통과 문제를 해결할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 궁극적인 빛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부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 생명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이 부활 생명이 우리를 기쁘게 하며, 이 부활 생명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나를 기억하고, 더욱 더 낮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