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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2014.02.28. 금요기도회 설교)


시편 119편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제가 어린  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니 한 11살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지금 채국이 나이 정도 될 정도로 어렸을 때였습니다. 저는 반에서 아주 개구쟁이 어린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장난도 많이 쳤고, 항상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항상 많은 수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녔습니다. 제가 친구가 많아지자 마음속에 한 가지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반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한반에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5명 정도가 더 많았습니다. 나는 남자이고 친구도 많으니 당연히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남자애들 중에서는 저 혼자 나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투표를 하자 전세는 뒤바뀌었습니다. 남자한명, 여자한명 이렇게 나와서 투표를 했는데, 이상하게 제가 그 여자애에게 져버린 것입니다. 그 아이는 얼굴이 뽀얗고 참 단정하게 예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남자아이들 몇 명이 그 친구를 좋아해서 그 아이를 뽑아 버린 것입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기분에, 또 며칠 전부터 반장이 될거라 온 동네 소문을 내놓았는데 안돼서 부끄러운 마음에 책상에 엎드려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반장이 된 친구가 곁에 와서 나를 붙잡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부끄럽고 챙피한 마음, 고마운 마음이 뒤엉켜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반장이 된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연필을 곱게 꾹꾹 눌러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물론 답장을 오지 않았고, 저 혼자 한참을 좋아하다 말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저는 서울로 대학에 왔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어느 날 누가 길에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그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여자애였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옆 학교로 대학을 들어왔고, 집도 제가 사는 근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에 제가 보냈던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나 그것 좀 볼 수 있나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하며 그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 메일로 보내주었습니다. 무려 12년 전에 썼던 편지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참 기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니 내가 그 친구를 얼마나 순수하게 좋아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자 한자 마음이 담겨있었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11살 김동희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아이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글은 힘이 있습니다. 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글을 썼던 사람을 만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글을 통해서 그 글을 쓴 사람의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 그 사람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제가 12년 전에 쓴 그 작은 편지를 통해서 12년 전의 나를 만났던 것처럼, 각자의 글은 그 글의 저자를 만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글쓴이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생각을 흔들어 버립니다. 좋은 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킵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우리를 움직이게도 만듭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글들을 고전이라 부르며 칭찬했습니다. 어떤 글은 단순히 감동이나 지식을 줄 뿐 아니라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경’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서삼경이라 해서 시경, 서경, 역경,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책들은 그렇게 존중되었습니다. 사람은 글을 쓰고, 글은 사람을 만들어왔습니다. 역사속에서 살아왔던 훌륭했던 이들이 글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수많은 글들 중 하나의 특별한 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기존의 글과는 특별히 다른 글입니다. 수많은 글들은 그 글을 통해서 그 글을 쓴 사람을 만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동의보감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허준입니다. 훈민정음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분은 세종대왕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 글의 저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글 저자 너머의 특별한 분을 만나게 합니다. 이글은 성경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통해 만나는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성경의 저자의 생각을 넘어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썼을지 몰라도 우리가 마태를 통해 만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이사야서를 이사야가 썼을지 몰라도 우리가 이사야서를 통해 만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성경을 쓰게 하시고, 성경을 우리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목적은 곧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른 보통의 책과는 전혀 다른 책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에게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지침을 가르쳐주는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처세를 가르쳐주는 책도 아닙니다. 오직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그 분을 보여주시는 통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게 될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패역한 존재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절히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길이 모두 성경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으라, 생명의 떡을 먹으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를 마셔라 말씀하십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갈급하여 또한 말씀에 갈급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그 말씀을 사모합니다. 오늘 말씀 33절에서 35절까지를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오늘 성경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여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라.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심판받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아는 말씀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또 복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유와는 상관 없이 말씀 그 자체를 듣고 따르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 만남의 기쁨을 매순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나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읽고자 할 때, 자기 자랑과 자기 정욕, 자기 의를 언제나 드러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통로인데, 우리는 말씀을 우리를 위해 활용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말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말씀, 자기 욕심을 위해 말씀을 활용합니다. 자랑을 위해 말씀을 읽고,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말씀을 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만남이 없으면서 그저 말씀 읽는 것 자체에만 집중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잘못된 말씀읽기는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또 오늘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아픔과 고통, 상처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말씀 구절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고, 교회를 무너뜨렸으며, 약한자를 착취하고, 불의를 눈감았습니다. 성경을 축복과 번영만을 추구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고자 하셨으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우상을 더욱 크게 키웠습니다. 다같이 36절, 37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보아야 할 것은 주의 증거들입니다. 그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탐욕으로 활용하는 짓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허탄한 것들을 보지 않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보지 말고, 오직 말씀을 통해서 주의 길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38절 말씀과 같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의 말씀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도 적으며,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더욱 적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치 속이 썩어가는 거대한 고목처럼, 한때의 영광을 생각하며 자기 안이 썩어 죽어가는 줄 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나는 아직 큰 나무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괜찮겠지, 난 이렇게 큰 껍질을 가지고 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조차 자기를 꾸미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진정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말씀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먼저 성령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말씀을 읽을 때 우리를 분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우상을 위해 말씀을 활용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지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를 위해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를 예수님에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님의 역할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일이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잘 이해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성경이 곧 예수님을 드러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정확히는 성경 안에 드러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말씀을 온전히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 역시 성경 말씀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주목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합니다. 우리 또한 그 십자가와 부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방식, 우리의 자랑,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생명을 소망하며,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39절에서 40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9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죄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죄로 인한 비방과 정죄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선하심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사모할 때, 우리가 그 복음에 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 곧 구원의 생명으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 생명 가운데에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