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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심판 (2014.03.30. 3,4남선교회와 함께하는 오후예배)


마태복음 23장 29-39절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회사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종류의 사람과 함께 일하기가 가장 어렵나요? 우리가 잘아는 사람의 분류법이 하나 있습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 똑똑하고 부지런한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이중에 가장 훌륭한 직원은 어떤 사람일까요? 네 부하직원으로 가장 좋은 사람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윗사람으로 가장 좋은 사람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사사건건 개입하려들지 않고 맡겨주고 조정해주는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멍부입니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윗사람으로도 피곤하고, 아랫사람으로도 골치아픈 사람입니다. 조직이 원하는 목표는 분명이 여기에 있는데, 엄한 다른일을 죽어라 시키고 실제 핵심은 놓쳐서 성과는 안나오는 리더 밑에 있으면 모두가 피곤합니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겼는데 엄청 열심히 하지만 결과는 항상 엉뚱하거나 오히려 망치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만큼 속터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시켜놓고 다시 내가 해야할 때 터져나오는 분노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멍부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집이 세다는 것입니다. 사리판단을 정확히 못하는 반면, 자신의 일은 자기가 가장 열심히 해왔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듣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특히 지혜로운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열심히 홀로 파다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언이라도 할려치면 자기 생각과 자기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함께 망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종교적 멍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에 완전히 갖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만이 바른 것이라 생각하였고, 자신들의 방법만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무엇보다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멍부는 무섭습니다. 신앙은 바로 믿지 못하면 곧 맹목적인 신앙 곧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념에 가득찬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폭력들을 생각해보면 이 종교적 멍부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종교적 멍부인 그들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힘을 주는 방식,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 내가 세운 기준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방식, 귀를 닫고 말하려고만 하는 방식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원래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주의의 폭력과 당대에 무너진 사회 사상을 종교 부흥 운동을 통해 회복하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강고하였고, 자기 확신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고, 성전을 회복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면 다시 그 옛 다윗왕조와 같은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확신에 가득찬 나머지 주변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자기들 마음 속에 있는 교만한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뜻을 알지 못했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 서기관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종교적 멍부를 비판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지옥의 원어는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몰렉신에게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쳤던 곳이었습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은 부를 위해서, 자기 헌신을 위해서 자녀를 인신공양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어떠했을까요? 자녀를 불태우기 위한 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참혹한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시체 태우는 냄새와 구더기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녀를 잃은 어미의 애통함과 슬픔이 넘치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지옥은 우리가 우리의 우상과 완고한 신념, 자기 의, 자기 고집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목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멍부인 사람들은 그 삶이 이미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선포하십니다. 아벨에서부터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인은 바로 이러한 자기 집중적 폭력이다. 내가 무조건 옳다, 너는 틀리다, 너는 죽어야 한다 하는 마음이 이렇게 사람을 죽였다. 하나님의 참 뜻보다 내 생각, 내 소견이 맞다 라고 하는 너희의 그 생각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죽였다. 너희의 그 열심, 그 노력이 바로 나를 대적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 뿌리 예루살렘은 모두 무너질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심판받을 것이다 선포하셨습니다. 바로 자기 중심적 신앙의 결과를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가장 명예를 모독하는 방식으로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완고함과 무자비함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통해 예수님께서 옳으셨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갖고 있었는 모든 방식을 뒤집으셨습니다. 바로 낮아짐의 방식, 겸손의 방식, 사랑의 방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만함과 자기중심적 상징이었던 옛 예루살렘의 무너짐을 선포하셨습니다. (실제 70년이 되던 해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방식, 곧 십자가와 부활의 방식을 제시하셨습니다. 교회가 새로운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백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벽을 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열심히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열심히 해서 많이 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좀 더 열심히 해서 신앙생활에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종교적 멍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길은 종교적 똑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뜻이 아닙니다. 여유로워지고 관대해지고 믿어주라는 말입니다. 좀 더 열심히 해서 비워내고, 낮아지고,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완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해야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빚진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사랑이 생겨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나누고 섬기는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방식은 좀 더 내가 낮아지는 방식입니다. 나를 비워낼수록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자녀들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하나님 뜻 앞에서 내 뜻을 내려놓는 것,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