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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곧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 겸손의 길,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 위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심으로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게 되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광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열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 가장 정확하게 정세를 판단하고, 자신들의 필요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지도자가 필요하였고, 극심한 가난을 해결해 줄 경제력이 필요하였으며, 그들의 종교를 마음껏 고양시켜줄 지혜가 필요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예루살렘에는 산적해 있었고, 이 모두를 해결해줄 확실한 전환점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갈릴리에 등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능력과 지혜는 예루살렘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였습니다. 물위를 걷고, 파도를 멈추게 하는 능력은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는 일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인 모세와 같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위대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증거였습니다. 예수의 언변과 지혜는 이미 탁월하여 어떠한 사람도 이겨낼 수 없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의 지혜는 다윗이나 솔로몬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소문이 들릴 때마다 흥분하였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왔음을 기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기대는 그들이 외치던 소리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던 그들의 외침은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욕망과 기대, 희망을 모두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향해 예수님을 밀어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완전히 반대되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자마자 그들이 가장 성그럽다고 생각한 성전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그리고서는 그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과격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적극적으로 로마를 뒤엎겠다는 표현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신성모독까지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희망과는 엇갈린 태도를 보이는 예수님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 중 하나인 가룟 유다마저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힘을 추구하지 않고, 능력을 추구하지 않는 예수님은 너무 무기력해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던 그들의 외침은 ‘십자가에 못박아라’라는 외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표현만 달랐을 뿐 궁극적으로 같은 외침이었습니다. 바로 ‘나를 위해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바로 이와 반대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필요하기에 나를 내려놓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나를 죽이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옳았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그 목소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이고 있을 때가 많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종려주일 호산나를 외치며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의 그 복음,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