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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루신 것은?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업적을 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정치를 해서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자녀들을 잘 키워서 훌륭하게 시집장가를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평생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참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그 가능성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 세계 최고의 연예인, 세계 최고의 학자, 세계 최고의 부자와 같은 말들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바로 아 우리가 사실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갈 생계를 꾸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기는커녕 당장 내 생계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굽신거려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자녀들을 잘 키우고 싶은데, 자녀들이 내 뜻대로 잘 안 따라줄 때도 참 많습니다. 심지어 건강조차 지키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처음 드렸던,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이루었습니까?’는 질문은 참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한평생을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수고하며 흘린 땀을 어찌 지금 우리가 가진 재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한평생 들었던 모진 소리, 서러운 소리들을 우리의 지위, 위치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이들을 키워내며 진자리 마른자리 닦으며 애썼던 그 수고와 사랑을 어찌 지금 아이들의 모습들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어느 것하나 이루어낸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제자들을 양육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놀라운 기적들을 베푸셨습니다.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애쓰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루어내신 것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을 나누어주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신성모독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받았던 모욕을 받고 십자가에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역적소리를 들으며 능지처참을 당한 것입니다. 이루어낸 은커녕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가장 비참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루어낸 것 없는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비참하게 달린 그를 비난하였습니다. 무시하였고, 저주하였습니다. 세상의 방식은 결과를 보는 방식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나에게 어떠한 이익이 될까만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힘과 부를 가장 중심에 두는 방식입니다. 그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은 가장 불쌍하고, 가난하고, 저주받은 존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은 그렇게 죽고만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오늘 우리를 이 같은 눈으로 똑같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 너는 예수를 믿더니 무엇을 이루었냐? 너는 예수를 믿어서 부자가 되었냐? 너는 예수를 믿어서 성공하였냐? 너는 예수를 믿더니 네 자녀가 잘 되었냐? 너는 예수를 믿더니 얼마나 잘살게 되었냐? 세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든 그 눈으로 우리를 똑같이 바라보고 그 입으로 우리를 똑같이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예수를 믿더니 너는 어찌 되었냐? 우리는 지난 세월 이러한 질문에 울컥하기도 하였고, 또 예수님을 전해야한다는 마음이 앞서서 성급하게 대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 우리는 예수 믿고 잘 살았다. 예수 믿고 성공했다 그러니 너도 예수 믿어라 열심히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대답을 하기 위해서 오히려 약자를 대해서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예수 잘 믿으면 잘 살게 되는 데 너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하게 되는 데 회개해라 훈계하였습니다. 또한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드리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네 재산을 더 드려보아라. 네가 똑바로 살지 않아서 그렇다 네가 삶을 바꾸어보아라. 충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때렸던 로마병정의 눈, 바리새인의 눈을 그대로 가진 채 옷만 교인으로 바꾸어 입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어렵고 힘들 수 있구나, 세상적으로 실패할 수 있구나. 슬픈 일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구나 하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눈과 그 입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죄와 질문들 앞에서 우리의 삶과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무능력한 하나님으로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신 것처럼, 우리도 침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루어놓은 것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사흘만에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의 방식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루어낸 것 없이 죽어간 예수님의 길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해내리라 하는 것이 오히려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금송아지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금송아지 위에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그 금송아지는 바로 욕심과 탐욕을 상징하는 우상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 그 금송아지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어린양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옳은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루어놓은 것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 왕궁은 어떤 건물이 왕궁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왕이 있는 집이 왕궁입니다. 아무리 초라한 집이라도 왕이 그곳에 있다면 그곳은 왕궁이 됩니다. 신하들도, 장군들도 모두 그 집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호위병들이 그 집을 지키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집에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기와집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멋진 장식이 달린 집이라 할지라도 왕이 없다면 그곳은 왕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와 드림이 결국 헛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우리의 사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지시고 죽으셨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위해서 죽으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셨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길이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의 길입니다. 당장은 죽음 같아도 생명이 있습니다. 멸망 같아도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 위해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마음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기 바랍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내가 기도를 통해서 무엇인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기도할 수 있구나, 참 감사한일이다. 내 기도가 예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되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드릴때마다 내가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구나. 참 감사한일이다. 자격 없고 부족한 나를 찬양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예배를 드릴 수 있구나.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하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룬 것 아무것도 없으나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고, 이 이루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도 우리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이 우리의 이룸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참으로 감격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안에 담겨있는 놀라운 보배를 매일매일 찾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