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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분하셨습니다. 이 구분은 높고 낮음, 고귀함과 천함과 같은 차별적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의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며 가나안 사람들과는 구분하여 새로운 기준을 따를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포로되었던 애굽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그 악한 애굽과 가나안의 문화를 따르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욕망, 탐욕, 폭력, 억압과 같은 하나님 없는 자기중심적 문화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가나안의 문화와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었고, 탐욕에 물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가치관 곧 물신주의와 약육강식의 문화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번영과 성장, 그리고 안정이었습니다. 이들은 우상에 빠져들었고, 하나님은 더 이상 유일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실패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사울 또한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접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힘을 이용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자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블레셋과 골리앗에게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블레셋 거인 골리앗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쳐들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골리앗은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자 하였습니다. 골리앗에게 있어 하나님이란 자신의 힘에 따라 판단되는 존재였습니다. 힘이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는 그에게 있어 약하고 무력한 신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도 믿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힘의 논리였고, 하나님은 그 힘의 논리 앞에서 이용되기도 하고, 아무런 힘을 못 쓰기도 하는 사실상 무기력한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이 사라지자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가나안 문화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의 방식과 문화를 거부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다윗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의 헛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힘과 욕심만을 추구했던 가나안 문화를 거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협박과 모독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힘이 우상이 되어버린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과 온 몸으로 하나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참된 것을 바라봄으로써 참 된 용기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그 삶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먼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백성으로 용기 있는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다윗처럼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아동부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