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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한 목자 (2014.6.29.지역과 함께하는 오후예배 설교)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저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릴때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텔레비전을 사지 못했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텔레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학교때는 자취하느라 텔레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그 이후는 군대에 가버렸고 여행을 오래했고 해서 텔레비전을 오래본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결혼을 하니 텔레비전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딱 방에 텔레비전이 있으니 자동스럽게 텔레비전을 켜게 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한번 딱 켜면 끄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닌 것 같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이것저것 보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드라마를 시간에 맞추어 챙겨보지는 않는데 이제 그 경지에 이르면 정말 많이 보게 될까봐 조심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잘 안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 가면 텔레비전 옆에 이렇게 쌓여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책입니다. 아직 젊고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이 텔레비전 옆에 책이 쌓여있으니 책보다는 텔레비전을 먼저 보게 됩니다. 읽어야 할 책이 점점 쌓여가 이제 천장에 닿을 지경입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이러면 안되겠다 이제 텔레비전보다 책을 좀 봐야겠다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 텔레비전이 나를 붙잡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딱 중요한 순간에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하면서 또 기다리게 합니다. 정말 예쁜 배우 멋진 배우들이 나와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 나와서 웃겨주느라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내 마음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광고와 홈쇼핑이었습니다. 광고는 15초안에 모든 마음을 빼앗으려 정말 노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다이어트를 하는 데, 이 다이어트의 적은 무엇일까요? 라면입니다. 그런데 한 11시즈음 되면 그렇게 라면 광고를 맛있게 합니다. 늘씬하고 잘생긴 배우가 나와서 먹어도 괜찮아 맛있어 이렇게 유혹을 하면 정신이 없습니다. 또 홈쇼핑을 잠시 볼라치면 그렇게 꼭 사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것 하나 사면 내가 당장 멋쟁이가 될 것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단 이렇게 텔레비전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것들로 유혹을 합니다. 간단히 저를 유혹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세상은 그렇게 저에게 공부를 잘할 것을 유혹하였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삶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였습니다.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뒤돌아보니 공부를 잘하면 참 좋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 그 자체가 성공한 인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뉴스만 보도 그 공부 잘하는 사람, 좋은 대학 간 사람들이 잘못들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은 저에게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때도 참 많았습니다. 네가 돈만 많다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어디있냐?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도 못받는다. 이 세상은 돈이 제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모든 것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옷이 허름하면 햄버거 가게에도 못들어갑니다. 승용차가 아니면 호텔 밖 100미터 밖에서 내려서 걸어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게 일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차가 작으면 천대받고, 옷이 허름하면 무시당하고, 직업이 돈을 많이 못버는 직업이면 하대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억울하면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라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곧 좋은 학벌이요, 좋은 인맥이요, 많은 돈이요, 힘센 권력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아집니다. 이러한 것들만 있으면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거꾸로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도둑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삯꾼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떠한 것이 진정한 친구입니까? 내가 있든지 없든지, 내가 높든지 낮든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돈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돈을 통해 받은 존경은 돈이 사라지면 언제든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학연이나 인맥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은 내가 실패할 때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이야기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 아들이 자신의 돈을 펑펑 써가면서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친구들이 다 자신의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은 그 아들에게 무척 잘해주었고 간과 쓸개를 모두 빼줄 것처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것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습니다. 너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은 나에게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하면 호언장담을 하였지요. 아버지는 조용히 돼지 한 마리를 잡아 포대에 넣고 친구들을 찾아가보자 아들에게 제의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가서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매우 위급한 일이 있으니 나를 좀 숨겨줄 수 있냐고 물어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상하는대로 아들의 많은 친구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포대를 메오곤 아들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 한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받아주었지요. 아버지는 그 친구의 집에서 그 돼지로 함께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참된 친구는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임을 충고해주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생각했던 돈, 인맥, 권력, 학연과 같은 것들은 이러한 아들의 친구와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순간 우리의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 모두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에 매여있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것들이 영원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입니다.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너희 문이라. 너희가 언제나 나를 통해 들어가고 나를 통해 나오게 된다. 너희는 나를 통해 꼴을 먹고, 나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 나를 통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는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 그 복음이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생각할 때에 그저 지식이나 깨달음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구나, 내가 그것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만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또 나에게 주셨군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과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게 도와주세요 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매 끼니를 먹으며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군요. 이 모든 것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밥을 먹으며 나만 생각하지 않고 오늘도 굶고 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수많은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게 도와주십시오 고백하는 것입니다. 햇살을 받으며, 청량한 공기로 숨을 쉬며,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며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에도 아 예수님 이렇게 귀한 사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서도 주님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단히 붙잡는 것입니다. 또 예배를 드릴때에도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드릴 때에도 주님 나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를 드릴때에도 내가 예수님이 원하는 기도를 드리게 도와주세요. 말씀을 들을 때에도 주님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매 순간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 그것이 복음 안에 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양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문이라 하셨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예수님을 들락날락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꼴을 먹으며 생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매 순간이 예수님으로 인해 의미를 갖게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참으로 기쁜 삶입니다. 주님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바로 우리의 죄, 우리의 어리석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다같이 14-18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다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6절 말씀에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다른 양은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또 죄가운데 있는 양들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들입니다. 이곳에 제 이름을 넣고 고백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양 동희가 나에게 있다. 내가 그를 인도하여야 겠다. 동희도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동희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만 다시 부활할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일이다. 나는 동희를 위해 스스로 나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결국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셨습니다. 이 목숨으로 바꾸는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 생명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얻은 생명의 삶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릴 수 없는 것, 우리를 언젠가 떠나갈 것,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인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오로지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참 생명을 얻는 길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먼저 만드신 그 길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