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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넘어서는 예루살렘의 제자들 (2014.7.9.지역과 함께 하는 기도회 설교)


사도행전 4장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저는 어제 관악산 등산을 하였습니다. 아시겠지만 전 낙성대에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창문을 열면 관악산이 쫘악 펼쳐저 보입니다. 작년 6월에서 이사온 뒤에 관악산을 보면서 저기를 한번 올라가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매번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방학도 했겠다 한번 올라가야겠다 결심을 하고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듣기로 관악산이 악산이라서 힘들다 했는데, 어제 올라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힘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절벽을 기어서 올가가기도 하고, 줄 하나를 잡고 돌을 타고가기도하고 정말 아찔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올라갔는데 거의 두 시간 넘게 걸려서 도착하였습니다. 이 등산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참 등산과 같습니다. 내리막길이나 산책로를 지나는 것처럼 신앙생활이 수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높은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신앙생활하기 정말 힘들 때도 있습니다. 어제 한 봉우리에 올랐는데,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가 저에게 작은 우유 한 팩을 주셨습니다.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습니다. 이렇게 등산 중에는 돕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도 있지만 곳곳에서 나를 돌부리들, 미끄러운 절벽들, 모기떼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나를 괴롭혔고, 두렵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등산을 하다보면 가다가 도저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길이 없어졌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제 앞을 막아선 것입니다. 어~ 어떻게 하지? 해서 보니 큰 바위의 꼭대기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올라갑니까? 물었더니 기어서 올라오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겨우 네발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날 쿵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위가 내 앞길을 완전히 막아버릴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낙심하게 되는 것이 또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등산과 같은 삶 속에서 잃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마음의 중심입니다. 잠언 4장 23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지만,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등산을 할 때는 딱 등산 생각만 해야 합니다. 모든 생각을 딱 내가 오르고 있는 길에 집중을 해야 다치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최선을 다해서 올라갈 생각, 내가 다음 발을 어디에 딛을까 하는 생각,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오르고 있는 중에 딴 생각을 하다가든 자칫 발을 잘못 딛게 됩니다. 잠깐 딴 곳을 바라보다가 자칫 다른 길로 들어서 원하지 않는 곳을 헤메게 됩니다. 잠시 쉬어가며, 마음을 되돌아보고, 돌아온 길을 바라보고, 정상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지만 일단 걸음을 들어서서는 오로지 등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충성하다 단어서 충이라는 글씨는 가운데 중자에 마음 심자를 사용합니다. 오로지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 이것이 바로 충성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충성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오로지 한 곳으로 모으는 것, 우리 주님만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삶의 한 걸음 한걸음 오로지 주님께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신 뒤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성령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 우리의 생명과 구원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성령님을 통해 놀라운 능력과 역사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다락방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로지 부활한 예수님께만 집중하여 예수님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파하던 곳은 불과 2달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시퍼렇게 권력을 잡고 돌아다니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더 서슬 퍼렇게 예수의 제자들을 찾아 다니던 때였습니다. 오늘 말씀 내용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은 것은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은 첫 교회는 신앙의 집중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신도들을 삼천이나 더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 못 걷게 된 이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셨고,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경험한 제자들은 곳곳에서 놀라운 일들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그 제사장들 안나스와 가야아바, 대제세장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다가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을 죽일 수 있었던 힘을 가진 자들은 제자들을 겁박하고 경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너희들도 십자가 못박을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오히려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오로지 예수님께만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에 있는 돌부리나 모기떼들과 같은 방해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바위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새파란 절벽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로지 내가 가야할 정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만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한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주와 함께 내딛는 그 걸음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웠지만 두렵지 않았고, 걱정이 있었지만 더 이상 걱정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온 뒤 교회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이 기도 가운데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24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대주재라는 단어는 데스포테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말로 주권자, 전능자, 통치자를 뜻합니다. 시간도, 역사도, 세상도, 생명도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것이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당장은 어려운 것 같아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결국은 모두를 구원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리라는 믿음 이 믿음이 교회를 세워나간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최후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25,26절을 봉독하겟습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들은 망연자실 하였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가장 저주받은 사람이 받는 형별인 십자가 앞에서 그들은 절망하고 뿔뿔이 도망갔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참혹한 절망 속에서 놀랍게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를 확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목격했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안에 구원이 있음을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믿음 안에서 교회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장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 로마 제국의 압제자들이 커보여도 그것들은 결국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우리에게 던져주나 결국 우리는 부활 생명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이 마음으로 세상에 담대하게 나갔습니다.


세 번째는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같이 30,31절을 봉독하겠습니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세상은 그들을 겁박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죽음의 권세로 복음을 짓밟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 생명을 선포하였습니다. 아픈 자들을 낫게하고, 죽음의 정사와 권세를 사랑으로 이겨내며 예수님의 이름을 이땅에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이일이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이들이 기도할 때에 함께 하셨고 이들을 진동시켰으며, 이들을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해 용기와 담대함을 얻었고, 능력과 은사를 얻었으며, 사랑과 섬김을 얻었습니다. 성령님의 강한 역사하심이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강한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흔들림 없이 붙잡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께 이 믿음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험한 산과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시절과 오늘날의 시절이 다르지 않습니다. 악한 세력은 훨씬 교묘해지고 달콤해졌고, 각각의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과 어려움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다 말할 수는 없어도 우리 모두는 각각의 사연들을 또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길 위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은혜가 필요합니다.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그 은혜가운데 거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 은혜 안에 들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