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더서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그래서 오늘 우리의 이야기와 참 많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가운데에서 일하시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에스더는 그의 삼촌 모르드개와 함께 끌려온 전쟁포로의 신세였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부모를 잃은 고아였습니다. 삼촌 모르드개의 수양딸이 되어 이방 땅에서 비천한 신세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희망 없는 이방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그녀는 삼촌의 도움과 신하들의 추천으로 왕비가 될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왕의 눈에 들어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러한 그녀의 삶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살던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고, 자신의 욕심과 야망에만 온통 관심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자기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왕비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과감하게 왕비를 폐위시켰고, 자신에게 반역한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잔인하게 처형했습니다. 페르사아의 고위 관리 하만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그 권력을 통해 자신을 높이는 데에만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민족적인 원한과 사적인 감정으로 그는 한 개의 민족을 절멸시킬 계획을 짤 정도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대의 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나라, 하나님 없는 문화,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죄와 악함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악함은 유대인들에게 큰 위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유대인들이 왕의 율법과 다른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모두 죽일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세상의 문화와 법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그들에게 생명의 위협이 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에스더는 이들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하나님의 숨겨진 도구였습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악한 문화를 이길 힘이 무엇인지를 에스더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에스더는 세상의 문화에 대항하여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자기희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녀는 모두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이이라는 공동체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죽음으로 공동체의 생명을 이루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보다 강한 것이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율법의 참 뜻이 사랑임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에스더의 노력은 모든 유대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모든 유대인들의 문화 또한 지켜냈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 일맥상통합니다. 에스더의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심지어 죽기까지 사람을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이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에스더를 통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 땅의 모든 악한 문화, 페르시아와 하만과 같은 문화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승리하였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 복음 안에서 승리의 삶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