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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서는 ‘고통’을 주제로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씀해주는 지혜서입니다. 욥기서는 다른 지혜서에 비해 내용이 어렵고,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기는 다른 지혜서와는 다른 시각, 다른 관점으로 고통의 문제를 깊이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전통적인 지혜의 말씀은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의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뿌린대로 거둔다. 선을 행하면 선으로 결과가 나오고, 악을 행하면 악으로 되돌려 받는다와 같은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신명기와 같은 율법서, 잠언과 같은 지혜서 같은 곳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이 실제의 삶 속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바르고 선하게 산 사람인데도 실제의 삶을 보면 끊임없이 고통 가운데에 있는 경우가 있고, 악하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인데도 세상 속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실제 삶 속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욥기서는 이러한 현실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저주로 여겨지는 피부병에 걸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이 세 친구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지혜의 관점으로 욥에게 충고하였습니다. (이 관점은 오늘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네가 이렇게 저주를 받은 것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이제 죄를 회개해라. 그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너를 회복시킬 것이다 충고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무조건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욥이 복을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하나님을 자판기처럼 생각하였고, 결과를 보고 원인을 기계적으로 판단해버리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욥은 이러한 친구들에게 항변하였습니다. 자신의 고통은 죄의 결과가 아님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친구들의 충고가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만을 더욱 안겨준다고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고통은 수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고통이 죄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시고자 직접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함께 당하시며, 십자가의 아픔으로 동참하셨습니다.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문제를 자신의 고통으로 풀어나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고통 가운데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당장은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그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바라봅니다. 욥의 고통을 두고 욥의 친구들은 율법을 들이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욥의 친구들을 정죄하시고,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올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에는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고통을 넘어서 모든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됨을 선포한 것입니다. 욥기서는 섣부르게 고통의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보다 더 큰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극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