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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친구인가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2014.9.21 아동부 설교를 바탕으로 한 가족과 말씀나누기)
  
어느날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하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는 그러자 누가 제 이웃입니까? 질문을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좋은 이웃을 찾지 말고, 좋은 이웃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웃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강도 만난 이웃을 그냥 두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 살린 사마리아 사람이야 말로 참된 이웃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단순히 마음이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 사람이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이 가야할 길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은 먼저 그에게 처한 외부적 어려움을 극복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불안을 넘어서게 하며, 의지와 열정을 줍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난 유대인을 보고 마음의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그로 하여금 강한 사랑의 일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상처받은 유대인을 만난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내려가는 광야입니다. 여전히 강도가 있고, 들짐승이 있으며, 척박한 길 입니다. 그를 데리고 가는 길은 더 험난하고 어려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 돈이 더 드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뜨거운 마음은 이러한 역경을 넉넉히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뜨거운 사랑으로 그 십자가의 고난의 아픔을 묵묵히 지셨던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은 사랑으로 그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은 또한 자신 내면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겐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경험과 배움에서 생긴 편견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편견은 우리의 생각 곳곳에서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한 방향으로만 이끌고 갑니다. 유대인을 지나쳤던 제사장과 레위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의지하며 살아갔고, 그 결과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감에도 그를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자신이 부정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또 자신들이 그 사람을 돕게 될 때 자신의 일을 다 하지 못할 것이라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생각의 결과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랑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의 맘에도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 사람을 구분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체를 만지고 부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선순위를 사랑으로 두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드시고 병자를 고쳤던 것, 이방여인을 만나고 그들을 고쳐주셨던 것, 혈루병 걸린 여인이 자신을 만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정하다 여기지 않고 구원해주신 것은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옷을 입고 오시고, 저주받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이러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예수님처럼 온전히 사랑에 매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간구할 때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이 피어날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길을 가는 우리 아동부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