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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평강, 그리고 소망 (2014.9.26. 금요기도회 설교)


로마서 15장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인들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여라."

11    또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모든 이방인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너희 모든 백성아, 그를 찬송하여라."

12    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이새의 뿌리에서 나와, 이방인들을 다스릴 이가 올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분에게 소망을 두리라."

13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소망으로 여러분을 채우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에게 소망이 차고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동부 사역을 처음 하였습니다. 경험도 지식도 부족하였고, 설교조차도 해보지 못한 막막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믿고 뽑아주신 목사님, 장로님들께 감사했고, 또 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부모님들껜 참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 마음 속에는 큰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마음에 들어오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 오면 참 행복했으면 좋겠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이곳에서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 선생님들과의 만남, 친구들간의 만남, 저와의 만남이 추억으로 쌓여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 교회학교의 추억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설교해주신 내용, 선생님들께서 가르쳐주시는 내용은 사실 생각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느꼈던 행복, 기쁨, 사랑이 제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좋은 길이 되어주었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말씀 10절, 11절 말씀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신앙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 모든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선포에 매우 중요한 신앙의 본질이 담겨져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경험입니다. 믿음은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쁜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힘이 듭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넘쳐납니다. 기뻐할래야 기뻐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국어사전적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가 일어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기쁨이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욕구, 삶의 안락함에 대한 욕구, 성취에 대한 욕구에서 느꼈던 그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헷갈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열매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하나님 때문에 기쁘고, 비록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기쁘고, 비록 절망스러워도 하나님 때문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에서 말하는 기쁨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라 라는 고백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백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며, 역설적인 것입니다. 모든 삶에 기쁨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자녀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신앙을 강요합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쁘십니까? 우리 선생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쁘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정말 즐겁습니까? 만약 이 질문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을 자녀에게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책봐라 책봐라 하는 것보다 집에서 먼저 티비를 끄고 책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으로 즐거워 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같이 12절 13절 말씀을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소망을 예수님께 두는 것입니다. 먼저 이 소망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시편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원수 갚아달라는 시가 왜 이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역개정으로 보니 시편에 원수라는 단어가 82번이나 나왔습니다.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원수가 나를 괴롭게 합니다는 탄식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시편에는 원수를 미워하는 듯 한 내용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바로 하나님께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을 많이 썼던 다윗은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그는 끝까지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 원수 때문에 괴로운 마음,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모두 가져온 것입니다. 삶의 문제를 홀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가 혼자 생각하며 원수를 미워하지 말야하지, 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해야지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건 오히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죄악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 생각하는 선악과를 딱먹은 교만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아픔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문제, 심지어 죽음의 문제까지도 모두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께 다 말하고 고백하고 나누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엇다 어디다 쓸래. 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시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시편은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또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다른 곳에 둘 때 우리는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자녀의 소망을 학원에 두십니까? 혹 자녀의 소망을 선행학습에 두십니까? 자녀의 소망을 돈에 두시고 있습니까? 자녀의 소망의 나의 지혜와 열정에 두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아닌 그 모든 소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이제 소망을 주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불안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안정을 주고, 편안하게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그런데 그 안정과 확실함을 확보하려는 그 노력이 결국 우리를 더욱 곤고함에 빠뜨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이 우상이라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송아지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선행학습을 시키고 있을 줄 압니다. 선행학습이야 말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안정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선행학습은 오히려 자녀의 학습욕구를 떨어뜨립니다. 먼저 배울 때는 어차피 배울 것 하면서 허투루 하고, 실제 학교에선 이미 배운 것 이라고 하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학습과정은 모두 나이를 고려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나이에 해야 할 것을 최대한 충실히 할 때 학업성취는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수학은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선행학습을 금지한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선행학습 하지말고 진도에 맞춰서 하루에 100분씩만 매일 수학문제를 풀어라고 가르쳐주셨고, 그 결과 저는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불안을 견디며 믿음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불안한 시대, 불안한 미래로 인해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진로에 있어서 아이들의 흥미와 꿈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안정된 직장, 안정된 미래를 결정해버립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자신의 삶을 결정된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결국 중년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기에 결국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는 데 확실한 길을 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앞이 보이진 않지만 믿음으로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길은 바로 예수님을 소망에 둔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마음의 불안감이 생깁니다. 이것도 의지하고, 저것도 의지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우선순위로 할 때 나머지 것들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소망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바라볼 때는 오히려 불안과 어려움이 다가오지만, 오히려 불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믿을 때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기쁨과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의 한치 앞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 영원한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고, 용기 있게 자녀를 키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것처럼 자녀를 키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기뻐지고 평안해질 때 우리 자녀들은 우리를 보며 믿음의 신비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불안하고, 자녀들을 그 불안함 속에서 몰아치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성적을 성취하듯 강요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믿음의 세계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 기쁨과 평안의 삶을 누린다면 우리를 통해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그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소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함께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과 함께 우리가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아직 자녀가 부족한 듯 하지만 채근하지 않으며, 나의 연약함에 대해서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불안함이 있으십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것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참으로 잘 되시길 바라십니까? 하나님께서만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되지 않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오늘 말씀 13절을 쉬운 성경으로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3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소망으로 여러분을 채우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에게 소망이 차고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