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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집사로 뽑았습니다. 구제에서 소외되던 헬라(그리스) 출신 과부들을 보살피고 구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이 일곱 집사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도가 아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초대교회 1세대로서 누구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참된 신앙의 모습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을 만났을 때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모습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줍니다. 먼저 우리는 스데반과 같이 부활생명 가운데 온전히 거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그의 위대한 삶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전히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이 부활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은 영원한 생명 가운데 거하게 됨을 확증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생명 사건을 스데반에게 기억하게 하시고 그 믿음을 굳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 가운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생명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그 생명에 온 삶을 드립니다. 생명 가운데 사는 사람은 생명을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비록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였지만 그의 순교는 교회 확장의 씨앗이 되었고, 복음 전파의 놀라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죽었지만 그의 생명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수많은 생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스데반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 거했습니다. 요한 1서 4장 18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우리가 죄에 매여 있지 않게 되었으며 심판받지 않는다는 깨닫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 심판의 두려움이 온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된 두려움은 하나님 사랑 가운데 거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힘과 권세는 사라질 것이요, 심판받을 것임을 알기에 이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은 사랑에는 감격하고 권세에는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고 하늘이 열려있는 것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곁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온전히 거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기쁨으로 용기있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모습은 그가 순교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순교까지도 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 곧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 생명 가운데 온전히 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과 같이 그 길을 또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길가는 아동부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