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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유대교를 배반하고 율법을 파괴한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믿고 있었던 그 믿음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였고, 심지어 스데반집사가 순교할 때는 그의 살인에 가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자신의 신념과 소견에 따라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열두제자도 그랬고, 당대의 유대인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도 이러한 모습입니다. 바울은 좀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그리고 공부를 해가며 믿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언덕에서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왜 자신을 핍박하냐고 물으시며, 그에게 자신의 부활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순간 눈이 멀게 되었고, 그는 아나니아를 만나 눈의 비늘이 벗겨질 때까지 3일간을 장님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놀라운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눈이 보이지 않음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영의 눈이 멀어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자신의 생각과 소견으로 말씀을 움켜쥐고 하나님을 자신의 뜻으로 해석했던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새 언약, 새 구원의 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껏 내가 생각해왔던 상식, 믿음, 율법을 모두 내려놓고, 모든 구원이 예수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십자가 위에 걸어놓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새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자랑, 나의 행위가 구원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나의 온전한 죄인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 그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바로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하였던 것처럼 바울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을 증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부활이 선포되었고, 그 부활 복음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살려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새롭게 말씀이 세워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도들로부터, 또한 믿음의 선진들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부활 복음입니다. 바울이 변화되었던 것처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 부활생명을 받고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부활의 길을 가는 아동부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