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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49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고, 복음을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율법에 매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는 그 어떠한 다른 매개체로 회복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소통하고자 율법과 형식, 제사와 기타 제도를 통해 나아가려는 모든 시도들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이 이러한 것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직면하고, 고백하며 오로지 은총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구원의 길임을 십자가-부활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이 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자기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을 통해 이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심지어 부활하신 것을 목격했을 때조차 예수님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해하려 하였고, 이용하려 하였으며, 그 속에서 기대와 절망을 반복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고, 그 자신들의 구원의 방식들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은 전적인 은총의 사건이며, 하나님의 구원사건이며, 모든 것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오로지 그 부활을 사도들 자신의 부활로 믿고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들과 우상들을 십자가로 내려놓을 때 부활로 임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함과 감격으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 뿐 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전적인 은총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제도와 교권을 통해서, 교리와 장정을 통해서, 권위와 정치력을 통해서 복음 위에 덧 붙힌 수많은 의무들을 사람들에게 조건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주의에 빠졌던 것처럼 로마 카톨릭은 이러한 것들을 다시 우상으로 만들고, 그 가운데에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권력을 통해 복음을 훼손하였고, 복음 위에 교회를 세워버렸습니다. 

종교 개혁은 이러한 복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복음이 참된 해방이요, 자유요, 기쁨임을 다시금 회복시키고자 한 노력이었습니다. 복음위에 다른 것을 섞지 않고 온전히 은총된 사건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참 기쁨을 찾아준 사건이었고, 다시 예수님의 뜻을 우리가운데 밝힌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계승해야할 개혁정신은 곧 복음의 그 길을 깊이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깊이와 너비와 높이를 알아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놀라운 사건인가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그 복음안에 거해야 합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개혁자가 되고, 개혁자가 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합니다.종교 개혁자들처럼 이 복음의 길로 나아가는 아동부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