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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하라 (2015.06.06. 대학부 사역팀 연합예배 설교)


신명기 24장


5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6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 

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8    너는 나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지켜 행하되 너희는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지켜 행하라 

9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지니라

10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11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이번달 5부 예배 주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외쳤는데, 여러분은 믿음이 있으신가요? 이 모든 것의 답은 아마 최영신 목사님께서 잘 대답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일종의 프리뷰? 트레일러? 광고 정도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한 뒤에 부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혼할 때에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이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미천한 제 경험으로 보자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보면 이 믿음직스러움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믿고 갈 사람인가? 내 온 삶을 걸만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살펴봅니다.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가 남자의 능력을 본다는 것, 남자의 인격과 신앙을 본다는 것, 남자의 가정을 본다는 것, 이런 것들이 여자들이 속물적이고 탐욕적이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단 모두 궁극적으로 이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가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형제분들이 결혼하고 싶다면, 각각의 스펙에 집중하기 보단 내가 모든 것들을 종합했을 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 믿음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믿음이 믿음 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시간입니다. 믿음은 시간이라는 땅위에서 자라난 나무와 같습니다. 시간이 없다면 믿음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녀관계에서 믿음직스러운지를 살펴보는 것은 단시간내에 장기간의 삶의 여정을 검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장 보여지는 외모, 당장 나에게 잘해주는 매너, 당장 드러나는 지성과 같은 것들은 시간의 검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늙게 되어 버리고, 매너도 결혼하고 나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오늘 이 사람이 비싼 차를 타고 왔어도 그것이 이 사람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이 사람을 믿게 되는 것은 이 사람이 오랜 시간 축적해야 가질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이 사람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생기게 됩니다. 비단 남녀관계 뿐 아니라 우리가 믿을만하다라고 할 때 수많은 것들이 시간의 검증을 벼텨낸 것들입니다. 좋은 명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종교 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목사님 친구는 증산도에서 자꾸 전도하니깐 한 천년쯤 지나서 오시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누구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 축적된 삶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느 한 순간 내가 딱 믿어야지 하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그 순간 경험한 놀라운 믿음 마저도 시간의 지루한 검증 가운데 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한평생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을 배운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장자권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기 중심적인 믿음은 끊임없이 고생하며 무너져야 했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 믿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오히려 꿈이 무너지는 수많은 시간들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가지 재앙과 홍해의 갈라짐, 불기둥과 구름기둥, 십계명의 돌판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놀라운 믿음의 고백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40여년의 광야생활 동안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고, 자신들의 한계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사건으로 시작되나, 시간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 


지나가다 놀랍게 예쁜 여인을 발견합니다. 마음이 쿵 떨어지지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서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기적적으로 그 여인이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번호와 이름을 가진 뒤에 집에가서 카톡친구를 맺습니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지요. 그리고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너무너무 예쁜 그 사람을 보며 마음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설레임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이러한 사람일 것이라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 사람과 내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할 까 꿈도 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면 이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친구는 공동체 안에서 괜찮은 자매를 보았습니다. 우연히 같은 울에 배정이 되었지요. 대화를 나누며 이 친구 참 좋은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쌀 나눔 봉사도 같이 나갔습니다. 쌀나눔 봉사에 더욱 친해졌지요. 어쩌다보니 지역선교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깊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친해져보니 세상에 이 친구가 같은 동네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예배 후에 같이 집에 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신앙과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관계가 충분히 친해진 뒤에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두 가지 사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을 그 사람에게 투영해서 한 번에 무언가를 성취하듯이 사람을 만나려고 했고, 두 번째는 스토리를 함께 공유하며 사람을 만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쟁취하려는 목적이었고, 두 번째는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가 믿고 싶어하는 하나님, 내가 바라는 하나님을 두고, 내가 믿음을 결단하는 것이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야. 이렇게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은 두 번째 만남과 같이 스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스토리를 가진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바로 모세의 고백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사십년을 보내며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음을 앞두고 고별 설교를 합니다. 이 고별 설교에서 믿음의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가 고백한 믿음의 삶이란 믿어라 믿어라 주문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스토리를 만드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스토리는 바로 사랑을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말씀 설명)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은 것입니다. 나아가 믿음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이 재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을 넘어가, 구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삶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은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 닮은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두잉과 빙은 하나가 됩니다. 자녀들이 속상하게 할 때마다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도 네 자식 낳아보아라, 저는 그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곧 알 것만 같습니다. 자식을 낳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자식을 사랑할 때 비로소 아 우리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셨구나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자식을 사랑하는데,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계획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감격해서 사역의 나오기도 하지만, 거꾸로 사역을 할 때에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은혜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받은 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은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은혜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헌신과 사역을 통해 우리가 받고 있는 은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믿음이 깊어지고 든든히 서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굳건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내려놓게 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낸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따라가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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