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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나아가자 (2015.07.12. 대학부 집회 설교)


히브리서 4장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가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또 제 스스로에게 해주는 조언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네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면 그 길은 참 좋은 길이다.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움, 그 새로움이 반드시 너를 성장시킬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학문의 대가이신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쉽게, 그러나 제가 한 번도 생각할 수 없었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길들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당혹스러움, 희열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들을 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탄성, 희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첫사랑을 만났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삶의 길들을 걷게 되었을 때 그 때의 새로움은 그 전의 나로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새로움을 경험하는 삶, 그것이 창조적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말씀을 만나러 예배에 나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말씀 앞에서 새로운 창조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바로 앞서 말씀 드렸던 예측할 수 없었던 당혹함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2절, 13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예측할 수 없었던 당혹함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학문은 앎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여행은 세상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면, 말씀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창조적 경험이란 바로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얼마나 세밀하게 내 자신을 분석해서 드러내는 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선언합니다. 말씀은 새파랗게 날선검과 같다고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낱낱이 드러나고,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기를 정확히 바라보고, 말씀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 말씀을 통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 내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면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 앞에서 자기 십자기를 지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느 한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나이까?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부자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합니다. 부자청년은 이때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는 예측할 수 없었던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돈을 귀하게 여기는구나 하는 것을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내가 가진 상처와 아픔들, 내가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 내가 분노하고 있는 것, 나의 죄악들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당혹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앞에 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은혜 받았다는 말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은혜는 때때로 감동과 감격과 헷갈릴 때가 있고, 때때로 우리가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말씀 앞에서 당혹감에 빠질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에 희망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을 찔러 쪼갤 때에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깊은 절망 속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찾기 시작하게 됩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 은혜를 안다는 것은 이 질문 앞에 섰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니 도대체 내 존재에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도 않고, 내 존재가 죄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에겐 이 어려움과 아픔을 이길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내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14절 15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말씀앞에선 직면하게 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신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함께 경험하시고,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납해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16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긍휼하심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받고, 모든 상황 속에서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선 사람만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온전히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향해 끊임없이 그리고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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