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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내 안에, 세상 안에 (2015.09.05. 사역팀 연합예배 설교)


누가복음 13장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이번 달 우리 교육 2부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성경을 한참이나 뒤적거렸습니다. 여러 말씀 중 무엇을 나누면 좋을까 하다가 제 눈에 딱 들어온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며, 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어야겠구나 하는 고백이 되었습니다. 이 고백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사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관계가 회복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정의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각각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하는 것은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은 하나님 한분이요, 우리의 일은 수단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인지,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역에 근본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나침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실 아주 간단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겨자씨가 많은 새가 깃드는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말에 불과한 누룩이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큰 빵이 되는 것입니다. 참 간단한 내용이지요. 그런데 이 비유에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첫째로 오늘 비유에는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체는 누구 입니까? 바로 겨자씨와 누룩입니다. 겨자씨는 1mm 정도의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누룩은 효모라고도 하고 이스트라고도 하는 발효제입니다. 밀가루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을 빵을 부풀릴 때 사용하려고 넣는 것이지요. 이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체는 분명합니다. 작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작고 연약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 온전히 낮아진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실제로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가장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절절히 깨닫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 강한 것, 부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연약할 때, 가장 겸손할 때, 가장 자신을 내려놓았을 때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온전히 연약한 사람, 온전히 겸손한 사람, 온전히 낮아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가장 낮아지고, 초라해진 곳이 바로 모든 이에게 구원을 선포한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낮아짐에 높아짐이 있고, 무너짐에 세워짐이 있으며, 죽음에 생명이 있음을 선포하는 역설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주체는 바로 이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바로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낮아져야지, 약해져야지, 부족해져야지 한다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사랑에 빚진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 섬길수록 더 낮아지게 되고, 더 사랑할수록 더 연약한자가 됩니다. 우리가 짝사랑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면 어떻게 됩니까? 완전을, 병, 정이 되지 않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더 사랑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점이 작다는 것 외에 하나 더 있는 데 무엇일까요? 바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죽은 듯 해 보이나, 가장 연약해 보이나, 가장 초라해보이나 놀랍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으나 단 삼일만에 살아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씀입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안에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당장은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고 더 높은 곳, 더 강한 것을 추구합니다. 위엄과 영광을 온몸에 두릅니다. 군사퍼레이드를 하고, 명품을 두르며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사람안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겸손해지고 온유해지고 오래참으며 낮아지나 오히려 그 안에 풍성한 생명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 생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사랑에 매여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 작은 생명이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둘째로 놀랍게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도록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확장하면서 큰 힘을 갖고 많은 돈을 가지며 많은 나라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생명력을 가진 하나 하나의 사람들을 통해, 이들이 모여있는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 드러난 하나님을 아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작은 씨앗처럼 보이는 겨자씨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입니다. 누룩은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이 생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 안에 묻혔을 때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본질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갈아 엎게 되는 것입니다. 거친 땅이었던 우리의 마음이 생명이 넘치는 동산으로 변화 됩니다. 메마른 밀가루에 불과했던 우리의 마음이 풍성하게 살아 숨쉬는 반죽으로 변화됩니다. 나아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 시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는 그들로 인해 온전한 사랑과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교통하시사 참된 관계의 회복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자신의 욕망과 힘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낮아짐으로 섬김으로 사랑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존재가 온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주 작은 믿음에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충만함으로 퍼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이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씨앗은 흙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거친 흙이라 할 지라도 흙이 있을 때 씨앗은 그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를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질 낮은 밀가루라도 밀가루가 없는 누룩은 아무 효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던져졌을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불어 척박한 땅을 새가 깃들이는 곳으로, 메마른 밀가루를 많은 이들이 먹을 수 있는 풍성한 빵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을 살립니다. 겨자나무가 자라면 2-3m의 나무가 됩니다. 누룩 서말은 13.13리터로 약 160여명을 먹입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내어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것을 말씀은 선언합니다. 이 성장은 환원되지 않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모든 이를 살리는 길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길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믿음이 온 사람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역자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숙명입니다. 오늘 비유는 그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길에서 참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밴쿠버 새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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