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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 (2016.01.03.대학부 집회 설교)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2016년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은 아날로그로 흘러가는 데, 그 시간을 쪼개어 매듭을 짓는 것은 참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일곱 개씩 매듭지어서 일주일을 만들고, 삼십개씩 매듭지어서 한달을 만들고, 삼백육십오개를 매듭지어서 일년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매듭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다시금 돌아보며, 결단하고 결심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매듭 위에서 옷깃을 잘 여미고 신발끈을 다시 잘 매셨습니까?


우리 대학부도 이 매듭 위에서 새로운 시작을 열었습니다. 우리의 오랜 벗들인 90또래를 졸업시키고, 앞에 보이듯 귀요미 97또래를 맞이하였습니다. 또 새로운 임원단, 리더들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중심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주제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번 교회 주제는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교회’입니다. 교육2부 표어는 ‘흐르라 생수의 강 – 화목’입니다. 이에 맞추어 우리 대학부 주제는.. 여러분 두구두구 해주십시오. 하나, 둘, 셋 하면 공개하겠습니다. 두구두구.. 하나, 둘, 셋! 짜잔~ 십자가로 화기애애입니다. 사실 이 뜻을 어제 임원 리더 오티때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또 새로운 대학부원들이 많으니 다시한번 나누고 자합니다. 여러분 화기애애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97 여러분 화기애애 뜻이 무엇일까요? 저는 어제 목사님의 설명이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7여러분이 아 대학부 이상해라고 할 것 같아서 걱정인데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다같이 옆사람 손을 잡아봅시다. 그리고 서로를 보면서 화기애애 발음해보세요. 꼭 표정이 저와 같이 밝아야 합니다. 화기애애, 화기애애. 엄청 웃기고 따뜻하고 즐겁지요? 이게 바로 화기애애입니다. 화기애애의 사전적 의미는 분위기가 서로 맞고 정다운 분위기가 흘러 넘친다 라는 뜻입니다. 애애가 아지랑이 애자입니다. 한자로 직역하면 화목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것이지요. 이 단어를 들으면서 참 좋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대학부 임원단이 참 탁월하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들어나는데, 이 주제에서도 딱 들어났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원래 뜻만을 사용할 뿐 아니라, 여기에 약간의 변주를 두었습니다. 화기애애에서 ‘화’자를 화목을 뜻하는 ‘화’. ‘기’자를 기도를 뜻하는 ‘기’. ‘애’자를 사랑을 뜻하는 ‘애’자로 바꾼 것입니다. 단순히 좋은 것 뿐 아니라 그 안에 기도가 있고, 사랑이 있는 진짜 화목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냥 좋은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진짜 좋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화목한 것 뿐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진실되게 깊이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담임목사님께서도 화목을 위해서는 진실된 말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와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이러한 공동체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표어가 참 좋은 것은, 이러한 화기애애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진짜 핵심을 앞 형용사로 붙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로’ 화기애애입니다. 화목함이 우리를 둘러싼 벽이요, 기도는 우리를 세워주는 기도요, 사랑을 우리를 덮어주는 지붕이라면, 바로 십자가는 우리의 근본인 땅바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 공동체는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위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화목과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가득가득 차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는 오늘도 선명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진~짜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죽기까지 사랑한다. 십자가로, 곧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이 사랑을 매순간 새롭게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안에 충만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놀라운 사상은 우월감과 열등감입니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바로 갑질을 합니다. 조금 부족하고 없으면 바로 을이 됩니다. 옷과 집과 차를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합니다. 외모와 학벌을 가지고 자존감을 가지려 합니다. 모든 사랑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 없는 우리는 자꾸만 엉뚱한 데 에서 자존감을 가지려 합니다. 그리고 이 부족한 자존감과 상처, 아픔은 우리가 화목할 수 없는 중요한 걸림돌이 됩니다. 교만함과 열등감 사이에서 우리는 갈라지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우리 안에 진정한 사랑을 채워 줍니다. 십자가는 우리 스스로가 흔들리지 않도록 버텨주는 굳건한 반석이 됩니다. 십자가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는 사랑의 생수의 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매주 매주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기도하고 간구하십시오. 주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득가득 채워주세요. 주님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해주세요. 주님 십자가를 더욱 알기 원합니다. 이 기도는 저의 매일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십자가에는 또한 하나님의 용서가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 속에 우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 대신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 돈과 명예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 내 생각과 신념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 쾌락과 욕망을 더 사랑합니다. 우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우상을 사랑하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삽니다. 우상을 사랑하는 우리는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상을 사랑할까요? 바로 안정감과 평안함이 바로 우상으로부터 올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참된 안정와 평안함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있으면 이 불안이 해결되겠지, 좋은 직장이 있으면 이 불안이 해결되겠지, 권력과 명예, 외모가 있으면 이 불안이 해결되겠지, 내가 많은 지식이 있으면 이 불안이 해결되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이 불안감을 우리 안에 불어넣었고, 이 불안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결국 한평생 끊임없이 우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참된 안정된 삶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무많은 죄, 곧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볼때마다 나의 죄는 근본적으로 용서되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이제 내 삶의 우상들이 더 이상 내 주인이 되지 않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누고 베푸는 삶, 섬기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를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나에게 임한 놀라운 용서를 깨닫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이제 진정한 화목을 누리게 됩니다. 삼남매, 치열한 반찬 전쟁, 통닭 전쟁, 아이스크림 전쟁, 매번 싸우다 화해가 이루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뷔페 가는날. 무한 리필은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더먹어, 더먹어 급작스런 친한 형제 모드로 바뀌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본적인 사랑, 근본적인 용납, 근본적인 공급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것이 화목의 시작. 이 화목을 잘 이루어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