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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44-53 (2016.07.21. 아침묵상)

category 묵상/사도행전 2016. 7. 21. 16:03

<말씀>

사도행전 7장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선포한 스데반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죄목으로 스데반을 공회에 고발했습니다. 스데반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진정한 성전이요, 예수님의 복음이 완성된 율법이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2.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그 무엇으로도 형상화 할 수 없기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이다’고 하는 고백은 율법을 미완성인 것으로 보는 율법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장막과 이를 이어받은 다윗의 성전이야 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유일한 장소이기에, 성전을 허물고 회복하겠다고 말한 예수님을 새로운 성전이라 고백하는 것은 성전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은 구약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견딜 수 없었던 모욕이었던 것입니다.


3. 스데반은 그러나 이렇게 성난 유대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그가 믿게된 새로운 복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고백의 모습은 그가 보고 듣게 된 복음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온전한 진리를 알게되었음을 온 존재로 보여준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통해 스데반은 하나씩 믿음의 핵심을 선포합니다. 48-50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을 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매여있지 않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며, 모든 나라를 다스림을 선포한 것입니다.


5. 이는 유대 민족주의에 매여있고, 성소(거룩한 장소, 곧 성전) 중심사상에 매여있는 유대인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 구원하셨고,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다는 믿음이 옳지 않음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그 곳이 성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6.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대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나누지만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손에 넣으려는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이 규정한 거룩한 시공간에 가두고, 그것만을 거룩하게 여기는 대신 그 밖에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삽니다. 주일만 거룩하고 예배당만 거룩하고 교회만 거룩하다고 믿고, 일상의 삶은 거룩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이지요. 


7.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모든 삶이 곧 예배요, 모든 공간이 하나님 만나는 거룩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놀라운 은총으로 가득 덮힌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8.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거룩하게 성전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거룩한 성전과 율법에 가둔 신성모독의 삶, 우상숭배의 삶을 살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해 죽였고, 심지어 하나님이 이땅에 오셔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몸에는 할례를 하였으나 마음에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9. 스데반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엄중한 질문을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이 담겨있다고 믿는 그릇(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 헌금을 열심히 내는 것,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은 믿음의 결과일 수 는 있지만 믿음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믿음으로 규정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이러한 것들에 가두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나는 헌금을 매달 열심히 냈으니 하나님은 내편이야, 하나님은 나의 성공을 도와주셔야해, 그리고 이러한 헌금을 드렸으니 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어.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나는 늘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은 문제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고백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헌금 대신 그 자리에 예배, 헌신, 기도 그 무엇이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10. 스데반의 가르침은 믿음이란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셨음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한계를 아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11.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그 은혜에 반응하여 참 기쁨과 평강을 얻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하고 온유하며 다른이를 섬기고 사랑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기꺼이 자신을 것을 내어 헌신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우상숭배적 믿음은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지요)


12. 우리 모두가 유대인들처럼 자신을 위한 믿음, 갇혀있는 믿음이 아니라 스데반처럼 참된 은혜로 얻는 믿음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13. https://www.youtube.com/watch?v=JPypOswJ0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