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하나님의 약속 (2019.12.01.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장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이번 주부터 앞서 광고 드린 것과 같이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4주간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는 주간입니다. 이번주를 시작으로 함께 마태복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우리에게 전하는 성경책을 복음서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렇게 네 개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40~50년 어간에 쓰여졌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을 ‘사도’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 돌아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순교한 사람도 많았고, 나이가 연로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예수님에 대해서 직접 말해줄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생애에 말씀에 대해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정리하여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당대 교회는 이미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져 있었고, 각 교회마다 자기 성도들에게 맞는 복음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로마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마가복음이, 안디옥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누가복음이,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마태복음이, 그리고 에베소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요한 복음이 쓰여졌습니다. 각 복음서는 예수님의 다양한 면모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 장목사님을 설명하라고 할 때, 우리 교회 성도분들이 장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각자 다른 모습을 말할 것입니다. 그 모습들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을 설명하는 다양한 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들어볼 때 우리는 장목사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개 복음서의 이야기를 하나로 잘 모아보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첫 복음서, 마태복음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율법이란 우리가 들고 있는 구약성경입니다. 그때 당시엔 성경은 구약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성경말씀, 율법은 곧 구약성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 율법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사도들은 그 율법이 선포한 메시아, 그 율법을 참으로 완성시킨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해주고자 하였습니다. 구약성경과 예수님은 서로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약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 그 구원을 완성시킨 분이 예수님이다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 통로는 바로 구약성경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루셨습니다. 이집트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해방시키시고, 율법을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세우시고,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나라가 둘로 나뉘고, 둘로 나뉜 나라가 멸망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새롭게 유다 백성들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온 세계를 회복시킬 새로운 메시아를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새로운 메시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복을 우리에게 주실 분, 모세가 받아온 율법을 완성할 분, 다윗이 세울 왕국을 진정으로 회복하실 분, 스룹바벨이 다시 지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을 다시 세울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에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구약의 모든 말씀, 모든 율법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다고 선포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말씀, 곧 구약성경을 없애려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스스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가장 직관적이고 확실하게 보여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정체를 알고자 할 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족보는 어디야? 때때로 족보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좋은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하며 선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적통을 잇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왕국의 왕으로 세운 다윗의 후손이시다. 이것은 육체적 계보를 잇는 분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잇는 분이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부터 예비되신, 또한 아브라함을 부를 때부터 준비되신, 다윗이 왕으로 올랐을 때부터 이미 계획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하시고, 다윗과 약속하시면서 예수님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시구나를 떠올리는 것과 더불어,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 다윗과 하셨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분이시구나를 떠올려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와 하시는 약속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키시는 분이구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한 약속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22장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시며 너에게서 나오는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씨가 요셉이 될 수도, 다윗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이 약속의 진정한 성취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에게 약속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무엘하 7장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할 것이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성전을 건축한 왕은 솔로몬이지만, 성전이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 할 때 진정한 성전, 곧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진정한 성전으로 세우신 이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을 영원한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고, 모든 상황과 여건을 뚫고 성취됨을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깨지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족보에 다섯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1. 다말
2. 라합
3. 룻
4. 우리야의 아내
5. 마리아

모두 남자를 중심으로 족보를 구성한 데 비해 다섯명의 여자를 직접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 다섯 명의 여인은 모두 매우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다말의 아내는 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엘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에는 형이 죽으면 그 동생과 형수가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동생 오난은 형수와 아이를 갖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리고 오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다말은 자식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아버지를 속여서 시아버지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막장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리고 베레스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2.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가장 처음 마주친 성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어마어마한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성을 정탐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는데 라합은 그 정탐꾼을 숨겨줬을뿐더러 창문에서 줄을 달아서 탈출시켜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후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라합과 라합의 집안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3. 룻은 모압지역의 여자였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과 대대로 라이벌 관계였으며 적대 관계였습니다. 롯은 모압지역으로 이사온 이스라엘의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롯의 시어머니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가나안 땅으로 가서 이제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떨어진 이삭을 주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꿋꿋이 시어머니를 돌보며 바르게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돌보아 새로운 남편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남편과 나오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4. 우리야의 아내는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마땅히 나가야할 전쟁은 나가지 성에서 놀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자 그녀의 남편이었던 우리야를 일부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우리야는 충성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엄히 추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다윗과 우리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죄와 비극이 한데 얽힌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둘째 아이는 다윗왕의 계승자가 된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5.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처녀인 상태로 성령으로 임신하였습니다. 당시 처녀로 임신했다는 사실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잘못된 관계를 맺었거나 로마 군인들에게 몹쓸짓을 당했다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약혼자였던 요셉도 처음에는 마리아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더불어 요셉 또한 꿈에서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듣고 기꺼이 그 어려움을 감수하였습니다. 이 젊은 부부의 순종은 하나님 사역의 결정적인 통로가 되었습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복잡한 인생을 통해 이루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강조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방식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하실까요? 우리의 온전함, 우리의 완전함, 우리의 거룩함을 통해 일하실까요? 우리가 인생을 완벽하게 살 때에만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의 인생이 잘 되고, 우리에게 뜻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절망적일까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교만과 절망 사이에서 늘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인생이 잘 풀리고 있으면 역시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잘하고 있어서 내 인생을 돌보아주시는구나,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또 뭘 잘못해서 내 인생이 어려워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조금만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모습, 부족한 모습이 많은데 내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복은 전혀 누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이 잘 풀리는 것을 보면서 난 전혀 문제가 없어 착각하며 하나님을 전혀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잘한 것은 잘한 데로 사용하시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그것을 뒤집어서 사용하셔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은혜의 약속은 반드시 그 뜻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아버지와 부정을 저지른 여인을 통해서도 이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기 민족을 배신한 여인, 그러나 진정한 진리를 찾아간 여인에 의해서도 이어져 갔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과감하게 목숨을 걸고 인생의 항로를 바꾼 여인에 의해서도 이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륜과 치정으로 얽혀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든 여인에 의해서도 이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욕과 수치를 순종으로 견뎌낸 여인에 의해서도 이어져 갔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히스기야, 요시아와 같은 걸출한 신앙의 인물들도 있지만 르호보암,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의 대명사같은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인간의 허물,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죄악들까지 다 조각들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그림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인간의 삶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이 우리가 맘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
1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 우리에게 계획하신 모든 복과 모든 은혜를 이어가시고 완성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데, 내 어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 있을까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이어가실 것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을 주님의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 늘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실수하고, 우리는 넘어지며, 어느때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때엔 반항하고 죄를 지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때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수도 있고, 어느때엔 아파하거나 울부짖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때엔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신앙에서 등지고 있을 때조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된 모습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삶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시고, 우리를 향한 약속을 지키시는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요, 이미 이루신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새벽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진실로 깨닫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걸어가길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