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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례 (2020.01.05.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3장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0년을 시작하며,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우리 새벽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는 한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에 깊이 와닿는 한해, 성령님의 일하심이 삶 속 곳곳에서 경험되어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고아가 아님을 깨닫는 것, 과부가 아님을 깨닫는 것, 나그네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참된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나에게 신랑되신 예수님이 계신다. 내가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내 삶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며,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에서 실제로 일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예수 믿는 삶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2020년을 준비하면서, 주님 제가 이러한 믿음을 조금이라도 깊이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올해 모든 일들과 모든 만남 속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예배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주유를 합니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이 기름 값이 계속 바뀌어서 조금이라도 쌀 때 주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져 가는데 계속 135달러, 139달러 이렇게 숫자가 뜨면 주유를 넣기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기름 부족 표시가 뜨고 맙니다. 그런데도 계속 주유를 안하고 며칠 더 버티자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불안감이 마음속에 생기곤 했습니다. 차가 멈춰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무리 비싸도 때가되면 주유를 어느 정도 해야 멈출 것을 불안해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너무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예배 때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말씀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다른 중요한 일들, 여러 분주한 마음들, 기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것들 때문에 예배 때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 영혼은 한 주 동안 내 영혼의 시동이 꺼지면 어떻게 하지 두렵고 불안한 마음,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은혜를 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2020년 우리 새벽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선은 저를 위해서 정말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정말 예배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려고 애써야겠구나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늘 부족하고 느끼고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분들에게 전하는 데 늘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또한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말씀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분들에게 감동을 주시길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을 위해서도 더욱 기도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매 순간 믿음이 자라나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한해가 되도록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새벽교회 성도 모두가 2020년 한해에는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믿음이 자라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세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함께 세례 요한을 나누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풀며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돌이킬 것을 선포하며,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다가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는 다른 예수님의 이야기도 그렇겠지만, 거대한 보물 상자와 같습니다. 성경 곳곳에 나왔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짧은 말씀 뒤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수록 놀라운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예수님을 알게 해 주는 귀한 지도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귀한 자리에 귀한 분을 모시면 우리는 취임식을 합니다. 그 취임식 때 어떤 것들을 나눌까요? 이 분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 어떻게 그 비전을 실천할 것인지를 함께 나눕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사실 예수님의 취임식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에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길을 가실지,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어떤 길을 가실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뜻의 세례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세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사람으로 사람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연약함을 가지고 겪으셔야 할 모든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요한에게 다가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오늘 말씀 14, 15절 말씀입니다.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줄 것을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는 세례는 회개를 결단하는 세례요, 예수님께서 받기에는 당치 않았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느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일을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이와 같이 해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이 세례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셔야 할 ‘의’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십자가 죽음을 통한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라는 단어를 훗날 제자들에게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8절입니다.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훗날 자신이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세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자신이 받아야 할 진정한 세례는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한 죄사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걸어가는 첫 여정에, 세례 요한을 찾아왔고 그 길을 걸어가는 첫 걸음으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죄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이들과 자기를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죄인과 같이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짐, 같아짐, 함께함이 예수님 사역의 본질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의미는 곤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겸손의 길, 낮아지고 낮아져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낮아지는 길을 가시겠다는 것을 세례를 통해 보여 주신것입니다. 십자가 죄인과 똑같이 세례를 받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럼으로서 죄인들을 죄를 대신 갚아주신 것 그것이 예수님의 길이요, 이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낮아지셨을까요? 예수님은 왜 우리와 같은 길을 가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입니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세례를 받으셨고,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요, 예수님의 세례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세례는 이 겸손한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 되심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여러분과 같은 삶을 사시고,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사실은 이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온 세계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그 놀라운 사실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기 위해 세례를 받고자 했을 때, 놀랍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16절, 17절 말씀입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선포되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늘에서 울려 퍼진 이 말씀은 시편 2편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시편 2편 6절, 7절 말씀입니다.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실 때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왕을 세울 때에 선지자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결단하고 그의 길, 그 첫걸음을 세례로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세례식을 왕의 대관식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세례 요한이 기름 대신 세례의 물을 부을 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공식적으로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주이시자 왕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른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의 왕 되심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왕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왕은 첫째로 군사로 백성을 보호합니다. 둘째로 정치로 백성을 통치합니다. 셋째로 법으로 백성을 재판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의 왕이십니다. 선한 왕이 백성을 보호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랑을 그 무엇도 끊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절 말씀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써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어떤 원수도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또한 선한 왕이 백성들을 선한 길로 통치하고 인도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이 완성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한 목자이시며 선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당신의 아름다운 열매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왕이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이 세상과 우리의 인생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33절 말씀입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악함을 심판하실 것이요, 하나님 거역함을 되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회복시킬 것이요, 다시는 눈물과 고통이 없는 나라를 새롭게 창조하실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낮아지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십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죽음권세를 이기심으로 그분의 통치를 완성하셔습니다. 진실로 선한 왕이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보호받고, 인도받으며, 최후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세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세 번째 의미는 이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최종적인 비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창조입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세 개의 장면과 오버랩되어 설교되어 왔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의 순간입니다. 창세기 1장 1~2절 말씀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 세상은 혼돈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창조가 되자, 빛과 어두움이 갈라져 질서가 생기고, 물이 갈라져 경계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질서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을 가르시고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님과 더불어 말씀하시는 장면이 하나님의 창조의 순간과 참 비슷하다고 보고, 이 세례의 순간이 새로운 창조의 순간임을 고백했습니다. 

두 번째는 노아의 홍수의 장면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21절 말씀입니다.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온 세상이 타락했을 때에 세상은 다시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과 땅의 경계가 생길 때에 노아는 방주 밖으로 비둘기를 내보내어 땅이 나왔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타락했던 세상이 심판되고, 새로운 세상으로 시작되는 순간의 장면이 예수님의 세례의 장면과 참 비슷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의 세례를 노아의 홍수와 비교하며, 이제껏 타락했던 세상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고백했습니다. 

세 번째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탈출했을 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거대한 바다인 홍해였습니다. 모세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지나갔을 때 그들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껏 애굽의 문화에 젖어 살아가던 그들의 삶은 끝났고, 새롭게 창조된 삶이 그들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애굽의 군대는 갈라진 홍해를 건너지 못하고 모두 물에 삼켜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가르고 나오셨을 때, 그 예수님에겐 이제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절 말씀에서 이 홍해 사건을 세례를 고백했습니다.

창조, 홍수, 홍해 모두 우리에게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이제 새로운 세계가 우리 가운데 임하였음을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가르고 나오실 때, 이제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살아가던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와 사랑이 회복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의 왕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세례를 바라보는 사람, 곧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선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과 그의 왕 되심,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처럼 겸손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나의 굳센 자아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깊이 감격하여, 예수님처럼 나를 낮추고 비우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왕이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내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온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0년 한해를 준비하며, 우리 모두가 이 예수님을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틴 루터는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신다. 우리 안에도, 밖에도, 위에도, 옆에도, 모든 곳에 계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순간, 모든 만남, 모든 생각, 모든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깊이 깨달아 알아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