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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2020.01.19. 주일 설교)

마태복음 4장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는 첫 말씀입니다. 3장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모든 백성의 왕이 되기 위한 대관식과 시험 절차를 모두 마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기 위해 일단 사역의 본거지를 정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12, 13절 말씀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 가버나움으로 지역을 옮기셨습니다. 이곳을 사역지로 선정하신 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잠깐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이곳은 우선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장인 동시에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는 만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하시기에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이방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선은 유대인을 향해 선포되었지만, 곧 이방인에게 선포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쉽게 다녀갈 수 있는 갈릴리 지역은 훗날 예수 복음의 귀한 전진기지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적인 이유보다 훨씬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을 받아 모진 고난과 어려움을 겪은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앗수르가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엔 많은 이방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을 우겨싼 지역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남부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겐 무시와 천대를 당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로마나 예루살렘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천대받고 고난 받았던 땅 갈릴리를 선택하셨던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연약한 사람, 가장 부족한 사람, 가장 주님의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괴로움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15절, 16절 말씀입니다.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말씀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혹시 어두움이 있으십니까? 그곳은 주님이 찾아오실 곳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 가운데 사망의 땅이 있습니까? 그 땅에 주님이 생명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늘 가운데 주저 앉아 있습니까? 빛으로 오신 주님께서 그곳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땅에 있는 모든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먼저 어두은 곳, 고통 받는 곳, 연약한 곳, 슬픔과 애통이 가득한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빛을 비추이시기 시작하셨고,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찾아오심을 바라보며, 우리가 주님께 내어드려야 할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슬픔과 아픔, 우리의 고민과 질문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가장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저주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주님이 찾아오시는 통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아픔들을 정직하게 내어드릴 때 그곳 가운데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빛을 비추어주셔서 주님이 우리 가운데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번째 설교 말씀을 하셨습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 찾아오셔서 가장 처음 하신 선포가 회개하고 천국을 받아들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늘과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회개하는 것과 천국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천국이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구름이 있고, 그 위에 멋진 성이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습니다. 존귀한 이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하늘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5절의 말씀은 오늘 본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습니다.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제 네 삶을 돌이켜서 주님을 맞이하라는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심판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회복시키신 나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생명이 온땅에 충만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껏 살아왔던 삶을 온전히 돌이키고, 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한 위로를 전하러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또는 우리 삶에 당장 필요한 무엇인가를 채워주러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선포는 모든 사람에게 외치는 선포였습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먼저는 당시 정치, 경제적으로 높은 계급의 사람들을 향한 선포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돈과 권력과 쾌락이었습니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빼앗고 죽이는 일을 늘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힘과 명예를 지켜내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네 삶의 주인을 네 자신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를 멈춰라. 모든 탐욕과 죄악을 이제 그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라.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선포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종교적 형식과 자기 의, 종교적 기득권에 갖혀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을 자기 자신의 종교적 신념, 그것을 바탕으로한 종교 형식, 그리고 그것을 지탱할 종교 기득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지 안지키는 지, 누가 자신들의 권위를 해치는 지 안해치는 지, 좀 더 적나라하게는 자기의 이익이 잘 지켜지는 지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셋째로는 불만과 분노에 가득찬 백성들을 향한 선포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지치고 괴로웠습니다. 그들은 그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나라를 뒤집어엎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개혁하길 소망했습니다.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로마의 앞잡이였던 헤롯왕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을 제거하고 백성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회개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의 생각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먼저 받아들일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넷째로는 이 모든 일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이들을 향한 선포였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무관심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삶에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의 생존과 평안과 안녕만을 생각했습니다. 자기에게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 잘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선포였습니다. 이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으로 갖혀있는 삶을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십시오.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의 방식이 틀렸음을 분명히 선포하고, 이제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는 당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고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선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에 앞장섰습니다. 그들의 죄악을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예수님의 선포 앞에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회개’선포는 사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선택하신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어둠과 아픔에서 시작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아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생존을 도모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어떻게든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를 붙잡고,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처럼 자기 의와 종교적,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정죄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복수하고 앙값음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네 번째 사람들처럼 다른 이들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고 이제 나 혼자 잘살면 되지 하면서 자기 안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멈추고, 우리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로 들어갈 것을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갈릴리, 우리 삶의 그늘과 어둠, 우리 삶의 죄악과 약점들 가운데 찾아오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갈릴리를 핑계 삼아, 갈릴리를 방패삼아 죄를 짓는 모든 모습을 회개하길 원하시고, 어둠 가운데 빛을 밝혀 주시고, 절망 가운데 진정한 희망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수많은 제국들이 자신들이 진정한 정의를 드러내는 나라라고 선포하면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집트가 처음에 중동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이집트를 밀어내고 앗수르가 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앗수르를 몰아내고 바벨론이 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바벨론을 몰아내고 페르시아가 이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그리스가 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스를 몰아내고 로마가 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계속해서 나라가 바뀌었을 뿐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의 그늘과 어둠 앞에서, 이 문제를 돈으로, 권력으로, 명예로, 또는 세상에 내놓을 만한 자랑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고통을 물리치기 위해 우상을 새롭게 들여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길은 다른 그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 집중하는 것, 우리의 길을 되돌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통치에 귀를 기울이는 것임을 우리에게 예수님은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길을 십자가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진실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경험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껏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 내가 권력이 있어야 인정을 받지, 내가 건강과 능력이 있어야 무시받지 않아. 내가 뭐가 있어야 해, 뭐가 있어야해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이 이제 거꾸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니 세상의 그 무엇도 나를 더 이상 흔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담긴 주님의 은혜를 보니 내가 이제 더 이상 헛된 걸들을 자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에 이제 자유를 얻었습니다.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십자가의 길은 용기의 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꺼이 하나님의 뜻대로 갈아가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두렵기 때문에 권세와 돈을 추구합니다. 자신을 지켜내고자 자기 앞에 성을 쌓고, 높은데로 올라가며,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찍어내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기꺼이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내려갑니다. 그길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요, 기쁨과 영광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자기의 힘으로 지켜내고자 애쓰는 사람은 다시 갈릴리의 어둠을 만들어내는 비참함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한 사람,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자기의 삶을 되돌린 사람은 예수님과 더불어 갈릴리에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은 이웃의 아픔들과 어려움들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 살피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스블론과 납달리 땅, 갈릴리로 가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삶에서 갈릴리 땅이 어디인지를 살피는 이가 됩니다. 우리 곁에 형제, 자매가 아파하고 있는 곳,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곳으로 갈 때 우리는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으로 갈 때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으로 갈 때 우리는 예수님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문처럼 갈릴리에 매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회개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