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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부르심 (2020.01.26. 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4장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홀로 모든 사역을 넉넉히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시 않으시고,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길을 선택하신 것은 그것이 주님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분의 뜻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통해 주님의 뜻을 함께 살피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첫 번째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먼저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한명한명 찾아다니며 직접 부르셨습니다.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시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또 21절 말씀을 보면 더 가시다가 야보고와 요한을 보시고 또 직접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를 직접 찾아가셔서 비전을 제시하시고 자신을 따를 것을 직접 요청하신 것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사실 이러한 일은 당시 상황을 살펴볼 때 굉장히 독특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을 랍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랍비들이나 선생님들은 제자들을 두고 가르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예수님처럼 선생님이 제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선생님을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좋은 학원 선생님을 찾아다니듯, 제자들이 선생님을 고르고, 그 선생님의 수업에 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를 두는 과정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셨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셔서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이처럼 직접 부르셨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미 알려져 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면 저는 학생이 선생님을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배우고 싶다. 그럼 수학을 가장 잘 가르치고, 높은 점수를 얻도록 해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싶다. 그럼 그 기술을 가장 능숙하게 하고, 그 기술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수학을 잘 가르치는 사람, 기술을 잘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의 능력으로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진리’였습니다. 누가 진리를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우리의 지혜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진리 앞에서 우리는 모두 무지하고, 진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무엇이 진리인지를 찾는 것, 그리고 진리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누구신지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이 ‘진리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찾아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후에,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한 후에나 예수님께서 곧 진리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한 후에 믿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로, 우리의 생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하나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해한 뒤에 믿는 분이 아니라, 믿은 뒤에 서서히 이해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아시기에 우리를 먼저 불러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찾아오도록 그냥 두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붙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아직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믿기도 전에 주님께서 우리를 알아봐주시고,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오게 된 것,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것,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 자체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자체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주님께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앙의 여정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의심이 있고, 의혹이 있다고 해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믿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나는 죄가 많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해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아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으로, 영원 전부터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은혜대로 하신 것이라 선포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대로 부르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그 분의 부르심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입니다.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불러주셨고, 그 부르심을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내 인생의 완성을 주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무지한 상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무수한 실패를 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훗날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를 끝까지 감싸 안으셨고, 결국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부르신 예수님께서 완성까지 그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 이러한 충만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 기대는 우리의 모습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완성시켜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함께 믿으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두 번째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당시 다른 선생님들을 따르던 일반적인 제자들은 주로 배우는 시간에만 선생님께 와서 가르침을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청하였습니다. 가족을 떠나서, 일터를 떠나서 예수님과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 함께하기를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은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을 온전히 따른 제자들 역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까지의 생존수단, 지금까지의 관계를 모두 멈추고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후로 이들은 모든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것에다 저것을 더하는 교양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별장을 추가로 가지듯이, 세상의 모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그대로 가진 채 예수님의 가치관도 추가로 가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완전히 돌이켜서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의 핵심은 우리가 가지는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청하는 것이 주님의 요청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과 동행할 때 진실로 우리 안에서 우리의 것을 버리는 일들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전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주님 앞에서 결단할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며 모든 삶을 함께 살아갈 때 서서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훗날 드러났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5~37절 말씀입니다.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그저 투자를 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배와 아버지를 버렸지만, 그들이 바랐던 것은 성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때에 자기들이 우의정 좌의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이 신앙생활을 통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재판장에 넘겨지자 그는 예수님이 보이는 곳에서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목숨이 위협에 쳐해지자 예수님을 따르던 그 믿음이 온전히 무너져 버린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목숨이었습니다. 대단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도, 사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도 버리지 못하였음을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러분의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십시오 라는 다그침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십시오 라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식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길과 십자가의 길 사이에서 십자가의 길로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과 의지로 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해진 후에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름으로 완전함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모두 훗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세상 가운데에서 복음을 선포하다 기꺼이 순교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고난과 박해와 어려움을 기꺼이 주님께서 주신 영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였고, 교회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으며, 영원히 빛날 주님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 놀라운 변화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기꺼이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에 주님을 초대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듣고 부르십시오.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교회 공동체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일터에서 늘 주님을 기억하시고, 가정에서도 늘 주님을 초대하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기억하고 하시고,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께 하듯 대하십시오. 늘 예수님을 찾고, 바라고, 구하십시오. 성령님 안에서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과 우리는 늘 연합해 있음을 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우리를 빚어가시고 우리의 신앙을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세 번째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동행 하시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지식이나 교리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것의 핵심은 사랑과 구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들을 위해 죽으시는 것을 직접 보여주심으로, 또 부활을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을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모두 물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작은 예수가 된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된 제자들은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예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물들이고 퍼지고 또 물들이면서 이제 온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작은 예수가 되도록 우리를 불러주셨고, 예수처럼 살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자기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 일의 참여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것을 믿고, 늘 주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주님은 일하시기 시작할 것이요, 그 일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부르심 안에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용납하시고 찾아주신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에,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감사하고, 또 신뢰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될 것이요, 더욱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어 갈 것입니다.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것에 집중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주님께서 보내신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내셔서 주님의 일을 이어가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작은 예수가 되고, 가는 곳곳마다 사랑을 퍼트리는 자가 됩시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사랑을 전파할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된 삶을 온전히 살아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