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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방법 (2020.01.12. 주일 설교)

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한 주간 삶을 살아가다보면,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우리 성도님들, 일어나서 아이들 챙기고, 해야 할 집안일들 좀 하다보면 밥 때 되시고, 밥하고 먹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립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주도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한달, 한해가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일을 나가시는 분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뭐좀 하려고 하면 점심되시고, 밥먹고 얼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저녁이 됩니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하다보면 하루가 금새 또 지나가 버립니다. 우리의 일상이 매일 매일 해야하는 일들만 처리하다가도 다 못 끝내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혹시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또 처리해야 하는 일, 또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더더욱 바쁜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면, 하루에 한번 예수님 생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식사기도 외에 하루 한번 마음먹고 기도하기, 하루 한 번 시간 내어 말씀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님하고 가까워지려고 하면, 새벽기도도 나가야 할 것 같고, 또 성경 묵상이나 하다못해 찬양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일상 속에서 틈을 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금씩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도 잘 믿었던 것 같은데, 내 신앙이 뜨겁게 열정적이었던 것 같은데, 더욱 주님을 알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런 마음이 아니게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만큼 든든히 서 있지 않은 것 같은 자각이 드는 것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이런 신앙의 연약함을 느끼고 있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삶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우리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을 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했던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교묘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죄악에 빠뜨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시험을 했던 마귀가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덤비는 것은 당연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귀의 시험을 간파하시고 말씀을 통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심으로 그 승리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시험하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믿음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지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마귀의 첫 번째 전략입니다. 그것은 바로 ‘만일’입니다. 마귀는 당연한 것에 ‘조건’을 붙입니다. 

<마태복음 4:4,6>

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나오시기 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 17절 말씀입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기에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단서를 달아 예수님께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단서’를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에 ‘조건’을 거는 것, 그것이 마귀의 첫 번째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첫 번째 마귀의 전략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은 온전해 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와 애씀을 반드시 귀한 열매로 맺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고 선포해주신 이 말씀은 너무도 아름답고 온전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수록 감격적이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고 온전해서 우리가 잘 못 받아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에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습니까? 우리가 그래도 하나님께 뭘 해드려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죠.’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틈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죠. 만일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가 있어야지.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 정말 믿음이 있어? 너처럼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네가 잘해야 은혜도 받고 복도 받는 거야. 
네 예배를 주님께서 받으실 것 같애? 똑바로 드려야 예배도 받으시는 거야!
네가 그렇게 죄를 짓고도 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애? 복은 온전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만 받는거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너처럼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애?
너처럼 못배운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네 모습을 봐봐 교회에도 하나님께도 덕이 안돼?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우리 마음 가운데 불어 넣는 것입니다.

한때 간증들이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더니 복을 받았다.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갔다. 은혜를 입고 성공했다. 돈을 크게 벌었다. 열심히 하나님 믿고 성공한 사례들이 물밀 듯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거꾸로 사람들을 낙심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돈도 못벌고, 성공도 못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아픔을 겪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건가 하는 질문에 빠지기도 하였고, 자신의 신앙을 부족하다고 자책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귀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이러한 모습이 있어야지 하는 이야기는 거꾸로 네가 이러한 모습이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보아라. 네 생존을 위해 네 능력을 발휘해 보아라 유혹했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기적을 베푸실 것이다.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미 아들이라 선포하셨고, 사랑한다 말씀하시는데, 마귀는 그 것을 마치 능력과 기적이 드러나야 증명되는 것인양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귀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또 마귀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네 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귀한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을 진실로 믿으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나 우리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셨고,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뤘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주님의 온전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흔드는 마귀를 이겨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굳건히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마귀가 다가오는 두 번째 전략은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금식하셨을 때에는 더더욱 빵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마귀는 이 틈을 타 예수님께 가장 필요한 것, 빵을 만들라 요청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해결해 봐 유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분이십니다. 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드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뒤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던 것처럼, 사역을 앞두고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시간을 마치신 뒤에 가장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모든 삶에 필요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생활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먹이실 것을 예수님은 믿고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께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우선 순위를 뒤바꿨습니다. 당장 필요해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시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늘 부딪히는 질문입니다. 주님 예수님 믿는 사람의 재정관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를 믿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무조건 가난하게 사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시험은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빵을 먹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빵이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한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안에서 수고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풍요로움과 넉넉함 또한 주님의 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순서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돈을 찾게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내 능력, 내 힘만 생각하여 돈만 벌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님과 관계없이, 심지어 부정한 일까지 하면서 돈만 열심히 벌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 간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게 되는 그 부유함은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됩니다.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공급 이전에 자기 힘으로 빵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채우심을 믿고, 그 안에서 우리의 모든 일과 모든 삶이 주의 사역이 되도록 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얻는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이웃과 교회를 위해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주신다는 그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은 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빵의 의미를 진실로 깨닫게 합니다.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먼저 붙잡는 것입니다.

마귀는 둘째로 높은 성전에 올라가서 뛰어내릴 것을 유혹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돕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어디 한번 뛰어내려 보아라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보아라 유혹했습니다. 이 마귀의 목소리는 훗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 똑같이 재현되었습니다. 네가 메시아이거든 어디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자가 남을 구원하겠다 하느냐 하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언제든 자기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핵심은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 보호하심, 책임지심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 속에서 우리는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뒤집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먼저 시험해보고 그것이 확인되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증명되는 것,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거꾸로 이야기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손으로 잡히지 않아도 믿음으로 나아가라. 그 믿음이 너희를 서게 할 것이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 눈으로 보고 믿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시고, 우리의 생각을 늘 넘어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을 원하십니다. 주님을 우리 뜻대로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 우리를 내어 드렸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마귀는 셋째로 자기에게 경배할 것을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절하면 천하만국과 모든 영광을 주겠다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은 천하만국을 통치하시고,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통치와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좁고 힘든 길로 들어가야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께 지름길, 편하게 갈 수 있는 길, 간단한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결과만 똑같다면 과정은 바뀌어도 되지 않는가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따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종교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 높은 권력을 가지고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내는 것, 인기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널리 알리는 것, 이런 것들이 물론 중요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앙의 핵심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마귀에게 경배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오히려 신앙의 핵심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의 마음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상한 심령, 주님을 찾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러한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입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순서를 뒤바꿈으로서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는 하나님의 사랑에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건과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말씀에 주목하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는 우선 순서를 뒤바꿨습니다. 우리는 늘 순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것에 앞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빵보다는 말씀이 우선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십니다.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됩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로 보이는 것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순서를 잘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결국 우리의 신앙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임을 믿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말씀 안에서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뢰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최후 승리를 이끌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믿음의 길로 가고자 결단할 때 먼저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