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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과 사랑 (2020.01.10.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1장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말씀은 역사적으로 많은 설교자들과 신학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왔던 말씀입니다.

도드 - 바울사상의 왕관 
브루스 - 바울사상의 진수 
로빈슨 – 바울 저술의 백미
바클레이 – 사람이 쓴 가장 신적인 글
콜리지 – 서신서의 여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 말씀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를 드러내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강해집들을 살펴보니 500페이지짜리 책으로 몇권씩 되더라도요.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말씀인데, 그 말씀의 비밀을 얼마나 잘 전할 수 있을지 부담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전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의 첫인사입니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첫인사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같이 말씀을 볼까요?
보내는 사람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받는 사람 :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첫인사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첫인사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 핵심이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세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모든 그의 저서를 통해 한가지를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이요, 끝이요, 모든 과정이었습니다. 바울은 말씀을 통해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고,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통해 경험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먼저 바울을 통해 일하신 그리스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3장 5,6절입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은 원래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야말로 정통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고,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소개하길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정통하다는 것은 성경을 달달달 외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썼고, 그 애씀을 굉장한 자부심으로 여겨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했을 때 그 이유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철저히 율법을 지키자 결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613개 율법 조문과 그에 따른 세세한 규칙들을 정해놓고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그러한 열심을 가진 바울이었기에 예수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고, 죄를 사하여 주고, 성전을 허물겠다 선포하고, 안식일을 범하는 일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아마도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저렇게 된 것일거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뒤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다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찾아 죽이고, 잡아 가두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당할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으며, 사도행전 8장 1절에 보면,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뿐 아니라 유대 지역 각지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다메섹이라는 지역으로 예수님 믿는 이들을 잡으러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는 길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바울이 땅에 엎드려지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직접 만나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회심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 완전히 뒤집어진 것처럼,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뒤에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얼마전 설교 때에 말씀 드렸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부활은 선포해줍니다. 그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다. 그는 죄가 없는 분이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었다. 그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창조주시다. 그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통치하신다. 그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다. 이와 같은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을 이때부터 부활을 증언하러 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그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은 말하지 않을정도로 놀랍습니다. 

바울의 삶은 매우 열심히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열심은 예수님과 별로 상관없는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열심은 오히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박해하고 해치는 열심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애썼지만, 그의 열심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열심이었습니다.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아이가 와서 아빠 저도 도울께요 하면서 이것저것을 자꾸 만집니다. 아이가 열심히 도울수록 저의 요리는 망쳐집니다. 아이는 아직 요리를 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뜨거운 물이나 칼과 같은 위험한 것들을 만지게 된다면 크게 다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나아가는 열심은 오히려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딱 그러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이 몰랐던 것, 하나 그 핵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예수가 너의 하나님이자 주인이시다. 너를 부르신 분은 예수시다. 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의 삶은 뒤집어졌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외웠던 구약의 모든 말씀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가야 할 길, 온 삶을 내던져 나아가야 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되었습니다. 참 기쁨을 얻게 되었고, 참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놀라운 고백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알게 된 뒤에 더 이상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항상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는 삶만을 살게 된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부활을 깨달은 바울은 더 이상 이 땅의 형편에 자기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하고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 그것은 바울의 모든 것을 뒤바꾼 사건이요,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자신을 고백하는 것은 이러한 놀라운 자신의 삶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 예수님을 진실로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뺀 어떤 열심과 애씀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은 가기 싫은 길, 어쩔 수 없는 길, 꾸역꾸역 가야하는 길이 아니라 놀라운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자유와 행복이 있는 길입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온다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와 힘이 생기는 길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것은 그의 지식, 그의 열심, 그의 글재주가 아니라 부활은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길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름 아닌 오직 예수의 귀한 보물을 얻게 되길 소망합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예수님을 통해 발견한 귀한 보물이 가득한 책입니다. 앞으로 몇 달간 그 보물을 하나씩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는 오늘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특별히 애착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에베소를 다녀왔습니다. 에베소는 고대에 크게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인구가 십수만명에 다다르는 도시였고, 무역이 크게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실제 지도를 보더라도 지리적 요충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우상숭배가 있었고, 특별히 풍요의 신이었던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아데미 여신 신전이 있었는데 엄청 화려했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직접가서 아데 여신 신상을 본적이 있었는데 엄청 화려했습니다. 지금도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유대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기들의 회당을 짓고 구약성경을 읽으며 유대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세례 요한의 세례는 알았지만, 예수님의 세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3달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세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단순히 삶을 회개하는 것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완전히 죄사함 받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무려 2년을 추가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최소 2년 3개월을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깊이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매우 방탕하고 우상숭배가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은 죄로부터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이제껏 따르던 우상들을 따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마술이라 통칭하는 우상숭배와 거짓 신앙들에 관한 일들을 끊고, 그 마술책을 모두 불살라버렸습니다. 그 마술 책값만 은 오만이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루 일당은 은 하나였을때였기 때문에 십만원이라고 쳐도 오십억원에 해당하는 책을 불태운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0절 말씀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에베소 지역 사회에 큰 반향과 저항을 가져왔습니다. 아데미 신전을 자기들의 큰 자랑으로 생각해왔고,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서 먹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큰 위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생업이 흔들리고, 우리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며, 아데미 신의 위엄도 떨어질까 두렵다 선동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분노하여 그리스도인들과 바울을 잡아다 죽이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제자들을 붙들어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폭동과 같은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두시간 동안이나 아데미는 위대하다 소리쳤습니다. 겨우 로마 관리가 와서 진정을 시킨 뒤에나 소동이 멈출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조용히 에베소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깊어졌지만, 그들의 신앙을 대하는 세상은 점점 더 난폭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이후로 적어도 250여년은 고난과 박해의 삶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바울도 훗날 감옥에 갖혀서 이 편지를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의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에베소의 향락과 유혹 속에서도 그들은 신앙을 지켜내었습니다. 훗날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에베소 교회의 주교가 되었고,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는 에베소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말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신앙을 신실하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신실함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입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폭발시키는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다면, 우리의 신앙을 지켜내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내 이웃을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실한 신앙을 이끌어 줍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과 늘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말씀은 요한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할때에 쓰신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그들의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갔을 것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에베소와 같습니다. 이익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풍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이익과 풍요를 얻는 것이라면 우상을 따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깁니다. 우리는 가장 화려한 사람, 가장 부한 사람,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추종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되고 싶다 매일 꿈꾸는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것들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돈을 법니다. 아데미가 오늘날 버전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우리의 신실함을 붙들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의 두 번째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를 통한 서로 사랑. 그것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 길을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을 깊이 경험하고, 그 부활 신앙 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깊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일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인사하면서 오늘 말씀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해, 서로간의 화해를 통한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도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