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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혈의 은혜 (2020.01.24.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1장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번 주에 영성의 대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성도님들 한분 한분을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삶의 자리가 다 다르고, 고민하시는 부분들이 다 다르고,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여정 속에서 부딪히는 부분들이 다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벽교회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한 형제자매구나, 그리고 함께 신앙을 걸어가고 있구나, 또한 모두들 겸손하게 주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애쓰시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시간과 마음이 될 때 언제든지 연락 주셔서 함께 만나고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새벽교회에 부임하면서, 느꼈던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설교에 관한 문제인데, 설교가 무엇일까? 설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저는 요즘 들어 설교가 곧 기도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기도 하며, 주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요. 말씀 선포의 순간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주님과 저를 포함한 성도 여러분과의 대화의 순간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성경 지식, 신학적 교리, 또는 세상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이 꼴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정말 이 설교가 주님의 말씀, 주님의 만져주심, 주님의 선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진실로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그 역사를 위해 제가 온전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하고, 또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간도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경험하고 그 뜻을 깊이 새기는 귀한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작기도)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있었던 주님께 드리는 바울의 찬양이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 까지의 말씀을 잠시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절과 2절 말씀은 바울의 인사였습니다. 바울은 인사를 통하여 자기 자신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도가 되었고,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세워졌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부활을 통해 선포하신 구원이 바울을 세웠고, 성도들을 세웠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평강이 넘치길 인사하였습니다.

3절부터 14절까지는 바울의 찬양입니다. 바울은 인사 뒤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함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이들을 고백하였습니다. 

지난주 찬양은 3~6절이었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온전히 연합한 존재라는 사실을 함께 배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과 예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그 모든 것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죽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태초로부터 계획하셨고,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고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혔던 담,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몇 가지 지표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있는가? 내가 좀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는가?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또 목회자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생기는가? 기도와 말씀과 예배의 자리가 사모되는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깊이 느껴지는가 입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이 의로운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변명과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은 크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분노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자기 권리 찾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의 죄를 보는 것에는 눈이 멀어있고, 귀가 닫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있는 티는 비판하면서 자기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심지어 봉사와 섬김을 넘치도록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겉사람은 좋은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속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만일 자기를 살피는 마음은 점점 줄어들고, 다른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마음이 커진다면, 우리가 만일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대화가 줄어들고, 다른이들을 비난하는 대화가 커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가 잘못 가고 있는 첫 번째 신호인줄 알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 사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살핍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를 깨닫고,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를 깨달으며, 얼마나 쉽게 실패하고 무너지는지를 깨닫습니다. 얼마나 불순종하는지를 깨닫고, 얼마나 사랑이 없고 무정한 사람인지를 깨닫습니다.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얼마나 우상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깨닫습니다. 주님의 밝은 빛이 비추이면 비추일수록 자기 안에 있는 무수한 흠과 티와 죄가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철저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임명되기 전에 청문회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 중요한 사람일수록 철저히 검증합니다. 작은 세금 서류 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훌륭한 것처럼 보였던 사람, 사람들 앞에서 그럴싸 해보였던 사람들도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증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낙마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봅니다. 사람의 검증도 이처럼 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검증은 어떠할까요?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이처럼 자기의 연약함과 죄악됨을 고스란히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장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 15절입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조차도 자기의 죄인됨을 깊이 자각하며 자기 자신을 비참하다, 누가 나를 죽음의 몸에서 건져 주겠습니까?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직면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이러한 죄악된 모습을 깨닫는데 말씀은 중요한 거울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아벨을 죽였던 가인의 죄, 바벨탑을 쌓았던 이들의 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삶 속에 나타난 죄인된 모습들, 이집트 파라오의 완악함,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죄, 사사들의 죄, 사울,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합, 므낫세와 같은 왕들의 죄, 예언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듣는 죄 이러한 수많은 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에서부터 관계 가운데 일어나는 데, 사회 구조와 세상의 방식속에서 일어나는 죄까지 정말 다양한 모습의 인간의 죄악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비추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죄인됨을 본질적으로 깨닫는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죄들이 우리 가운데 있는지를 우리는 말씀 속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절하고, 하나님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이러한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동시에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한편으로는 우리가 진짜 죄인이구나를 알게되지만, 동시에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이 진실로 크고도 깊고도 넓구나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만 알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는 지독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만 붙잡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우리는 한없이 가벼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된다는 것, 주님을 진실로 믿게 된다는 것은 이 두가지를 동시에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아 내가 진실로 죄인이구나, 그러나 이러한 나를 주님께서 진실로 사랑해주셨구나. 이 둘 사이를 굳게 붙들고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고, 놀라움이 있고, 의지와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에게 깊이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제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소나 염소, 양, 비둘기를 가져다가 그 동물에 안수하고 대신 그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말씀하셨던 그 선포, 하나님을 떠나면 죽음이 우리 가운데 오게 되리라 한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뿌리에서 잘려나간 가지가 얼마지나지 않아 말라 비틀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붙어있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외면하고, 불순종하고, 떠나면 그 운명은 죽음 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회복시키고자 죄사함의 방법으로 속죄제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제물에 전가하고, 그 제물을 대신 희생시킴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함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는 한계가 있는 제사였습니다. 제물의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만 열심히 드릴 뿐, 그들의 삶은 전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직접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우리를 용서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죽음은 영원한 죄사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선포합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린양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의 고난과 죽음을 대신한 것이요, 그분의 보혈은 우리의 피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가 우리에게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 죄에 대한 심판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깨닫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힘든일을 겪게 되면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곤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생길때에나 주님께 돌아보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의 어떤 어려움이나 상황 때문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십자가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때 우리는 우리 죄의 현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뜻대로 믿고 싶어하는 마음, 우리의 뜻이 늘 하나님의 뜻보다 늘 앞서는 모습들, 나의 유익을 위해서 이웃을 언제든 해칠 수 있다는 마음들, 하나님을 외면하고 찾지 못하는 모습들, 수많은 우리의 죄가 다름아닌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이요, 예수님의 살갖을 찢은 채찍이요, 예수님의 머리에 씌여진 가시관이요, 예수님을 매단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실로 우리의 죄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할 때 주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십자가가 멀리 앞에 있는 장식이 아니라 나의 죄를 깊이 깨닫는 통로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끝까지 참아내시고 견뎌내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보혈로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입안에 밥을 한숱갈 넣었는데, 그 밥 안에 작은 모래알이 있다고 합시다. 그 모래알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 모래알을 씹을때마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죄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품으실 때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밥알의 모래알처럼 주님을 끝없이 아프시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우리를 품으시고 변화시켜 구원하실 때까지 길이 참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이 곧 예수님의 참으심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통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되신 그분이 하나님의 거절을 겪는 고통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는 고통, 그 고통을 주님은 온전히 받아내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이 죄인의 비참함을 오롯이 견뎌내신 것입니다. 마치 모래로 된 밥을 씹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보내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을 묵상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습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넓은지, 깊은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위대한지를 우리는 계속해서 깨달아가야합니다. 한평생 이 사랑을 배워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삶을 마치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이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의 죄를 깊이 깨닫게 되고, 우리의 죄를 깊이 알아갈수록 십자가 사랑의 위대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죄에 대하여 날마다 죽고, 사랑에 대하여 날마다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선포를 진실로 더 깊이 알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직은 다 와닿지 않아도, 다 이해되지 않아도, 우리의 신앙의 길이 그것을 깨달아가는 여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것, 핵심을 뚫고 들어가는 것, 그 길을 찾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길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예배와 찬양 가운데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