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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2020.03.15. 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인사>

사랑하는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2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따뜻한 배려 속에서 아버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잘 보내드렸습니다. 비록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깊은 슬픔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귀한 아버지를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부활을 소망함 가운데에서 누리는 평안을 경험하는 신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다시 뵈지 못하기에 그리운 마음이 때때로 솟아오르겠지만, 하루하루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며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더욱 마음을 쓰며 살겠습니다. 더불어, 2주간은 신종 코로나로 자가 격리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교회와 성도를 위한 길이라 생각되어 2주간 예배는 영상 설교로 대체하겠습니다. 새벽기도회도 함께 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오늘 말씀은 참으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한 제자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이 세상 가운데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선포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저는 소금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군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겨울에 훈련을 하게되면 매우 혹독한 추위속에서 행군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30km, 40km 이렇게 긴 행군을 할 때 꼭 주의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옷을 두껍게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춥다고 옷을 두껍게 입으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목이 타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몸 속에 전해질, 염분이 빠져나가서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퍼져서 쓰러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 옷을 벗고싶지가 않았습니다. 조금만 입고가다 벗어야지 생각하고 옷을 입은 채로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하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게 돌기 시작하더니,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득 이러다가 쓰러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소대장이기 때문에 죽을지언정 낙오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때 번뜩 소금 생각이 났습니다. 굵은 소금을 가지고 다니는 소대원을 찾았고, 급하게 굵은 소금을 크게 한 숟가락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엄청 짰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곧 정신이 돌아오고 몸에 힘이 돌아왔습니다. 소금이 제 몸 전체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소금이 정말 귀하구나, 정말 생명을 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세가지금이 황금, 지금, 소금이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금은 우리 생명에 가장 필수적일뿐더러, 음식을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소금의 성분은 세균을 죽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으로 장을 담궈 먹어왔습니다. 젓갈이나 김치같은 음식들은 이러한 염장의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습니다. 

소금은 단순히 맛을 내는 차원을 넘어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을 악한 것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하는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빛의 역할도 소금과 비슷합니다. 소금이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은 빛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인권이 열악한 시대, 지역의 많은 감옥들은 빛이 없는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급속도로 쇠약해졌고, 빠른 속도로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틈새로 약간의 빛만 들어와도 그 방의 생존율이 높았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빛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곧 죽음의 행성이 되어버리고 말 것 입니다. 

더불어 빛은 세균을 죽이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지금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2~3일씩 썼는데, 마스크를 빨거나 알콜로 소독하면 마스크 섬유가 망가져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유일한 방법으로 일광 소독으로 마스크를 소독할 수 있다고 해서 햇빛에 말려서 썼습니다. 빛은 생명을 살릴뿐더러, 생명을 죽이는 것들을 없애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선포하실 때에는 이러한 소금과 빛에 담겨져 있는 놀라운 힘을 염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너희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너희들은 이제 빛처럼, 소금처럼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고,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앞서 선포한 팔복에 이어 곧바로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8복의 말씀을 잠시 회상해볼까요?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8복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구원과 위로하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행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사람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며 화평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로 인해 겪게되는 고난과 어려움을 담대히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 앞에서 내 자신을 깊이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으며, 그 은혜 안에서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고,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자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소금이다, 빛이다 말씀해주시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 속에서 소금과 빛의 모습이 있습니까? 빛처럼 소금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습니까? 불의와 죄악들이 우리를 통해 사라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이라 말씀하시면서, 더불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지킨다는 것은, 소금이 소금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지키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참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우리의 정체성,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지켜내는데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아무리 그럴싸한 신앙인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일 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 모습을 늘 살피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매순간 새로운 삶을 살 때 우리는 비로소 맛을 잃지 않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는지를 다시금 살펴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일상의 자리에서, 기도가 있는지, 말씀이 있는지, 주님 생각하는 시간이 있는지, 주님과의 사랑이 있는지, 다시금 살피길 소망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빛이라 말씀하시면서 빛은 드러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 꼭대기에 있는 마을이 딱 눈에 띄는 것처럼, 빛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불은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은 달리는 말이 아니라 되로주고 말로 받는다 할 때 말, 곧 곡식의 양을 재는 저울을 뜻합니다. 빛을 아래에 감추어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보이는 위에 두어 많은 사람들이 그 빛 속에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면, 우리를 통해 주님의 빛, 주님의 향기가 퍼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알게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한가지 예화를 나누어드리고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예화는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는 오늘 말씀의 정신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내어 나는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격려의 잔치)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이다. 빛이다 선포하십니다. 이러한 선언에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정확하게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보다 더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격과 능력과 성품과는 상관없이 먼저 소금과 빛이라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안에는 우리를 품어주시고, 용납하여주시고, 나아가 세워주시고 믿어주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빛과 소금이 될 때까지 애쓰는 것이 아니라 빛과 소금이라 칭해주셨기에 그 믿음과 사랑에 반응해서 빛처럼 소금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금 살피고, 주님 앞으로 더욱 나아가는 삶, 그리하여 내 곁에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