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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 (2020.03.22. 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5장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코로나 19 확산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31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만삼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이 심각한데, 미국의 확진자는 2만 6천 명,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5만 3천 명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퍼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언제까지, 얼마나 퍼질지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우리 비씨 주도 현재 424명이 확진을 받았고, 10명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의 전언에 따르면 지금도 의심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전염병과 같은 공동체적 비극을 맞이할 때 가져야할 첫 번째 태도는 공동체적 사랑입니다. 이 전염병이 누구의 죄 때문이다, 또는 어떤 뜻을 위한 일이다 라고 해석하려고 하기보단 먼저 이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병이 종식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애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도 이러한 주님의 뜻에 맞는 일이 무엇 일지를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율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율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에 대한 전 이해가 필요합니다. 잠시 창세기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람아, 너 나를 따라올 수 있겠니? 내가 가라는 땅으로 가라. 그곳에서 너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울 거야. 그 민족은 나의 민족이 될 것이야. 그 민족을 통해 온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될 거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세우시고, 아브람을 통해 민족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브람-이삭-야곱-요셉을 포함한 열 두 아들, 이렇게 차근차근 아브라함의 자손을 세워나간 이야기가 창세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이집트로 이사가서 살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400여 년이 지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크게 번성해서 남자만 60여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크게 번성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두려워했던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우셔서 이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원래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인 가나안 땅으로 이동을 시킵니다. 이 이야기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동시키는 와중에 이들과 약속을 맺고, 이들에게 지켜야할 언약, 곧 율법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 말씀입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따라야 할 법,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십계명을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포함하여 율법 613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십계명을 살펴볼까요?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모든 법에는 법의 정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사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깊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겉으로 하는 태도가 있고, 속에서 품고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그 태도를 통해 올바른 마음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가르칠 때 가르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운 말을 쓰는 것, 바른 자세를 갖는 것, 용모를 올바로 하는 것, 예의 바른 태도를 갖는 것 이 모두 이러한 태도들을 통해 바른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초기 한국교회 – 가장 깨끗한 옷, 빳빳한 헌금, 공손한 태도 ; 그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귀하게 여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와 마음이 갈라지게 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은 여전히 지키고 있는데 겉 태도를 지키는 것이 어려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도와 마음이 모두 조금씩 흔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무너졌는데 태도만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겉 태도만 그럴싸하게 지킴으로 자신의 악한 마음을 감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은 지켜야 할 태도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한 것인데, 율법을 통해 그 근본정신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켜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 마음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태도입니다. 주일을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 삶의 일부를 떼어 주님께 드리는 것,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이러한 태도들을 숙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되면 그렇게 살아졌나요? 속 마음은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삶의 모습이 그렇지 않고 오히려 잘못하는 모습이 튀어나오지 않으셨나요? 또는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보이고 있어도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나 이웃을 향한 마음이 점점 사그라들지는 않으셨나요? 계속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애쓰는 일들이 나에게 지치고 어려운 일이 되지 않으셨나요? 이것들이 율법대로 살려고 하나 늘 실패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모의했던 가장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리는 십계명 4 계명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 특별히 열심히 율법을 지키던 유대인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나라가 멸망한 이유가 율법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철저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안식일에 고치신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왜 굳이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하시는가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하고 율법을 모욕하고 폐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정신, 율법의 정신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에 있을 때에는 안식할 수 없었습니다. 쉽 없이 일하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만 했습니다. 이집트 제국은 그러한 풍요로움이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가르쳐 주시면서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도 쉬고, 네 집에서 일하는 모든 이를 쉬게 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깊은 정신을 잊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것까지 반대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와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다. 율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다시 회복시켜 완성시키려는 것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길,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알리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18절에서 20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온 세상이 없어지기 전까지 율법의 일점 일획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약속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근본정신,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역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놀라운 주님의 약속을 버리는 것, 이 놀라운 율법의 정신을 버리는 사람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그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정신,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서기관들보다, 바리새인이 깨닫지 못한 진정한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는 분명합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8장 3~5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이웃에게 죄를 짓는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예수님께 감당시키셨습니다. 율법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책임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격 없고 부족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 없는 우리를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되게 하시고,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매일매일 성령님에 힘입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진실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성령님께 우리의 삶을 의탁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봅시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매 순간의 삶을 성령님께 의지하고 있는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다시 주님께 내어드리는 결단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