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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 (2020.12.09. 대림절 아침 묵상 (6))

에베소서 2장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우리 예수님을 떠올리면, 우리는 여러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는 데, 그 중에 평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말씀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탄생하실때에, 수많은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이 천사들이 참 아름다운 선포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우리 주님은 그 태어나심부터 평화를 선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2. 우리 주님은 사역을 하시면서도 평화에 관하여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은 평안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평화와 평안 모두 에이레네라는 같은 단어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도 말라 말씀하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3. 마태복음 28장 9절에서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여인들을 만나며 첫 인사로 평안하냐 물어보셨습니다. 평화를 물으시는 분, 평화를 주시는 분, 평화를 이루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이와 같은 평화를 주시는 지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에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전합니다. 여러분은 원래 이방 사람들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신 여러분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껏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려왔던 유대인들과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5. 바울이 선포한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때에 조금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평화’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평화로 번역된 히브리어 ‘샬롬’, 그리스어 ‘에이레네’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있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저 단순히 전쟁과 다툼이 없는 상태, 마음의 평안한 상태를 넘어서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에 있는 상태가 바로 ‘평화’였습니다.

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화목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짐승의 기름을 하나님께 태워 드릴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화목한 뒤에야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과 평화에는 그에 합당한 희생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7.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거짓 평화에 대해서는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평강하다 평강하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평강이 없다고 선포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채, 탐욕과 죄악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만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평화롭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엄히 혼내시면서, 그러한 하나님 없는 평화, 죄악과 탐욕 위에 세워진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신 것입니다. 

8. 정리하면 평화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상태이며, 동시에 그 하나님의 뜻 아래서 이웃과의 화목케 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평화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9. 먼저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내어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이 다시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백성이었지만, 예수님 때문에 우리 또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는 헛된 우상을 주인으로 삼고, 그 우상 때문에 다투고 빼앗는 일에 몰두하는 죄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는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화평을 누리는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화목하게 하십니다. 

10.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묵상합시다. 그리고 우리를 이 평화를 주신 우리 예수님을 다시 기억합시다. 오늘 아침 기도는 유명한 프란체스코의 기도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이 기도문 제목이 평화의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화평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참된 평화를 이루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