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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 (2021.07.04.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2:34~46)

 

마태복음 22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중의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아래에 때까지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선택을 해야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때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게 됩니다. 그때에 우리는 말씀에 비추어 깊이 고심하게 되기도 하고, 목회자를 비롯하여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도움이 만한 책을 보기도 하고, 주변의 상황과 형편을 헤아려서 하나님의 뜻을 유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방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마태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일관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뜻은 규칙이 아니라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칙을 바라보는 ,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지지난주 말씀의 바리새인들과 지난주 말씀의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이 끝나자 이어서 율법사들이 예수님께 나와 질문한 것입니다. 34절부터 3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중의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사들은 구약의 율법들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구절들을 놓고 계속해서 토론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율법을 중요한 율법과 그보다는 중요한 율법으로 나눌 있다고 보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율법은 똑같이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율법학자들마다 율법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율법을 다르게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과연 문제를 해결할 있을지 시험해보기로 것이었습니다.

 

사실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규칙들이 있는데, 규칙들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구절 중에 예를 들어 피를 먹지 말라는 구절이나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들은 매우 강조되는 구절이지만 오늘날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거짓말 하지 말아라, 우상숭배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같은 구절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윤리로 받아들여집니다. 술먹지 말라는 윤리는 한때 교회에서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양하게 생각 되어 지기도 합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분명한 입장차이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율법사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질문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질문인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37절부터 38 말씀입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적어 이마에 두고, 손목에 두고 다니기까지 하였습니다. 쉐마라고도 불리는 말씀은 신명기 6 5 말씀입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존재를 다해서, 모든 감정을 다해서, 모든 생각을 다해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모든 순간, 모든 장소,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 우리의 삶의 방향들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세한 규칙을 통해서 우리를 율법주의적인 도덕주의자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사랑을 깨닫고 사랑에 붙들려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드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중심을 날마다 붙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뜻을 아주 이해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는 어거스틴과 종교를 개혁했던 마틴루터입니다. 두사람은 교회의 역사에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그대로 교회의 어른들입니다. 먼저 어거스틴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 

또한 마틴 루터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담대히 죄를 지어라!, 그러나 담대히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말들은 곱씹어 볼수록 기독교 윤리의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말들은 우리에게 방종을 가르쳐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며, 동시에 우리 존재를 깊이 이해한 말씀입니다.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니면 접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니면 멈추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자녀를 엄하게 키우는 하나님의 뜻일까? 조금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순간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혹시 선택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또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선택을 해서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은사가 있거나 말씀을 아주 능통하게 알면 뜻을 조금 쉽게 찾을 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선택은 어떠한 선택을 하든 실수할 밖게 없고, 우리의 선택에 있어서 100퍼센트 선이라는 것은 있을 없습니다. 우리에게 정해진 선택의 길이라는 것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선택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시고, 완성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매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에 매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택이 우리의 삶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우리의 삶을 가릅니다. 우리의 선택은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매번 흔들리지만,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온전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인도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되면, 우리의 마음은 이웃을 품게 됩니다. 내가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살펴보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관건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하나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 역으로 확인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거꾸로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안에 있을 우리의 모든 선택은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말씀의 핵심을 선포하시고 최종적으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41 말씀에서 46 말씀 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아래에 때까지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메시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메시아가 누구의 자손이라 선포되고 있느냐? 바리새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메시아가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왕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요, 메시아가 새로운 왕국을 세울 것이라 믿었습니다. 왕국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외세를 물리치는 나라, 성전을 회복시키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일을 이루시는 메시아는 그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110편을 1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1        여호와께서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수들로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말씀은 다윗이 고백한 시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주에게 말씀하셨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고백한 주가 누구일까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당대 유대인들은 모두 주가 메시아일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인용하며, 만일 메시아가 그저 다윗의 자손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자신의 자손에게   주님이라고 고백하겠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저 다윗의 자손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새롭게 새울 사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할 주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박사)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수많은 선택에서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맘대로 살지 못했다.

사람 사이에 맺힌 것들을 풀고 싶다.

나누고 살고 싶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엇갈리는 것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규칙이 아니라 원칙을 가르쳐 주십니다. 삶의 세세한 규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삶의 길을 선택하는 필요한 원칙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원칙은 바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선택의 비밀입니다.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 되길 원하심, 교만, 정죄, 억압, vs 겸손, 포용, 자유)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가를 살피는 일에 마음을 써야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의 열쇠가 예수님이심을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 되심과 주님되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오셔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모든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요, 사랑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안에 있을 우리의 모든 선택은 자연스럽게 주님이 원하시는 선택이 것입니다. 놀라운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