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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중심을 드리는 사람 (2021.07.18.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3:29~24:2)

 

마태복음 23

29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박고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동네에서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자녀를 모으려 일이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판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에 관하여 배운 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책임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의 모습을 지적하시며, 이들이 맞이하게 운명에 대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29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9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박고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동네에서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임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앞선 시대에 왔던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의로웠던 사람들의 비석을 꾸며주며 이들을 기리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우리가 예전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와 같이 선지자들을 박해하거나 핍박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며 한탄하였습니다. 예전의 조상들과 자신들은 전혀 다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그들과 너희는 전혀 다르지 않다.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의 자손들이다. 이제 너희가 조상들의 죄악을 잇게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위선을 부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싸해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실상 내면은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어지는 33, 34 말씀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주님은 이들이 앞으로도 주님께서 보낸 사람들을 박해하고 핍박하고 죽일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이들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말씀 전하는 자들을 보낼 것이지만, 그들이 이와 같이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돌로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그들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훗날 이들에 의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보이는 겉모습만을 계속해서 신경 쓰고, 주어진 일들을 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되돌이켜보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독일에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나치 시대에 유대인 업무의 책임자였습니다.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을 옮기는 일을 맡았고, 이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죽이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죄악을 저지른 사람 사람이었습니다. 2 세계대전이 끝나자 사람은 감쪽같이 신분을 감추고 도망갔습니다.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사람을 그저 두고 없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정보기관이었던 모사드가 세계를 뒤진 끝에 직접 아르헨티나로 찾아가 사람을 체포해 왔습니다. 결국 사람은 예루살렘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재판은 전세계의 중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변명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그저 공무원에 불과하였고, 자기가 한일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묵묵하고 충실하게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책임이 있다면 최종 책임자였던 상부에 있지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당연히 그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아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부당한 명령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내기도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유대인 학자는 아이히만을 연구하였는데, 이러한 주장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잘못은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었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그저 시키는 대로 이러한 일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되돌이켜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상부의 지시가 있고, 그것이 의무라 지라도 일이 옳은 일인지, 일이 어떠한 의미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성경말씀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누구보다 성전의 문화를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하여 앞선 세대들이 해왔던 대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성전을 운용하였고, 그렇게 사람들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너무 익숙한 문화에 살아간 나머지,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찾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도, 신앙생활도 그저 그들을 높여주고 안심시켜주는 역할을 ,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겉모습은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오자 이들은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흔들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권위는 이미 우상이 되어 버렸기에 이들은 이러한 우상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저 두고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 핍박하고,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특별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언제든지 이러한 함정에 빠질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구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처럼 우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라, 세상의 조류와 문화에 따라 살게 됩니다. 내면의 욕망에 따라, 죄악된 본성이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쌓이고, 그것이 우리의 몸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우리의 단단한 삶이 되어버리면, 어느새 우리는 그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이 불편한 일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며,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면 이것은 신앙의 겉모습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의 문제라는 것을 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이기엔 누구보다 훌륭한 신앙인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을 방치하였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 소홀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겉모습을 가졌으면서도, 하나님과 가장 멀리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깨우시치시 위해 귀한 교훈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 35절부터 마태복음 24 2절의 말씀입니다.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자녀를 모으려 일이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나아가 예루살렘이 황폐해질 것이라 선포하셨고, 예루살렘 성전도 모두 파괴될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 겉으로 꾸며진 , 그들이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것인지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역시 심판을 맞이하게 것임을 주님은 강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심판, 하나님 대신 믿는 것들의 허망함)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이 자신의 변명으로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 앞에서 우리는 다른 핑계를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난 한주를 되돌아봅시다. 나아가서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 봅시다.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황과 형편이 주는 두려움과 불안입니까? 마음에서 솟아나는 욕심과 욕망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입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습관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우리의 진정한 주님으로 보시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기 원하시며, 가장 작은 부분까지 주님께 내어드리길 원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무리 보인다 할지라도 그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 삶이 영원한 , 온전한 ,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다시한번 주님 붙들고 살아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